김도연 소설가가 70년대 대관령의 겨울을 추억하며 눈 치우기와 가족, 이웃과 함께하는 따스한 풍경을 묘사한 글입니다.
옛날 대관령 의 겨울을 아시는지요. 옛날은 제가 어린 시절이었던 70년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땐 참 대관령 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사나흘 꼬박 내린 눈은 흙마루를 넘어서고 정지의 나무문이 열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기도 전에 온 가족이 눈 치우는 일을 먼저 해야 할 정도였지요. 각자의 담당 구역도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넉가래로 외양간과 땔감을 쌓아놓은 나뭇가리로 가는 길을, 어머니는 뒷마당의 장독대와 무 감자를 묻어놓은 구덩이, 샘물로 가는 길을 먼저 치웠는데 제 구역은 당연히 마당 귀퉁이의 변소와 개집으로 가는 길이었지요. 손이 시리면 정지로 달려가 아궁이에서 타오르는 불에 녹였는데 가마솥의 쇠죽이 끓으며 피어오른 김이 부옇게 허공을 덮곤 했습니다. 소는 구유 밖으로 머리를 내민 채 연신 울었고요. 대문 밖의 개도 덩달아 짖고 닭장의 수탉도 질세라 거드는 아침이었습니다.눈이 내린 아침은 늘 까닭 없이 마음이 달뜨곤 했습니다.
눈이 발목을 덮을 정도로 내리면 넉가래나 싸리비로 치우지만 그 이상으로 내리면 네모난 삽으로 치워야 더 수월합니다. 눈을 퍼서 옆에다 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허리 정도까지 쌓인 눈은 길을 내면 옆이 점점 더 높아지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등에 땀이 흐르고 숨이 가빠옵니다. 아버지와 나는 구간을 나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이웃 골짜기에서 눈을 치우며 나온 사람들과 하나둘 만나게 되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여럿이니 눈 치우는 일이 훨씬 쉬워집니다. 대관령에선 많은 눈이 내린 날 눈 치우는 일에 나오지 않으면 마을 어른들에게 욕을 얻어먹습니다. 뒤늦게 나와도 마찬가지고요. 아무리 핑계를 대도 소용이 없습니다. 모두가 함께 이용하는 길의 눈을 치울 땐 한 집에 한 사람은 꼭 나와야 면이 서는 법이지요. 그 길이 마침내 자동차가 다니는 큰길과 만났을 때 허리를 주무르고 등을 펴는 사람들의 표정은 마치 바람 없는 날 내리는 함박눈처럼 아름답습니다.
눈을 치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른들은 상반신만 보이고 어린아이들은 머리만 보입니다. 만화영화나 그림 속의 한 장면 같습니다. 어른이 되어 우연히 보게 된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 ‘눈 속의 사냥꾼’이 반가웠던 것은 바로 그 시절의 대관령 풍경 때문이었지요. 하여튼 큰길로 가는 길을 모두 치웠다고 일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제부턴 집 주변의 눈을 치워야 합니다. 배가 출출해진 터라 수제비나 국수 한 그릇 비우고 다시 울타리 안의 눈을 치웁니다. 이 일은 길을 내는 것과는 다릅니다. 마당의 눈을 울타리 너머로 아예 던져버리거나 아니면 마당 귀퉁이에 쌓아야만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리어카에 담아 대문 밖으로 옮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급한 건 아닙니다. 화롯불에 몸을 녹이거나 방에 들어가 구들장에 등을 지지다 나와도 됩니다. 저는 아직 초등학생이기에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어른 키보다 높은 눈 더미에 동굴을 뚫어 나만의 방을 만들기도 했지요.
눈이 내린 밤이면 아주머니들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 군용담요를 펴고 둘러앉아 ‘달보기’라는 화투를 새벽까지 쳤습니다. 나는 그녀들이 풀어놓는 마을 이야기를 들으며 잠을 자다 깨기를 반복했지요. 그녀들 앞에는 한 알에 10원인 강냉이 알과 한 개비에 50원인 성냥개비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요. 아, 가끔은 만취한 남편이 찾아와 담요를 뒤집고 고래고래 욕을 하며 아내를 끌고 가는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평화로운 겨울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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