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PD가 창작자인 줄만 알았지 [미디어 리터러시]](https://i.headtopics.com/images/2023/5/4/sisain-editor/506124754032464989522-506124754032464989522-1653987820501958658.webp)
어릴 땐 기자나 PD가 세상을 바꾸는 줄 알았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그저 세상에 해로운 일을 덜 하려고 발버둥 치는 생활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신혜림 (유튜브 ‘씨리얼’ PD)
어릴 땐 기자나 PD가 창작자인 줄 알았다. 창작. ‘방안이나 물건 따위를 처음으로 만들어냄.’ 정의를 찾아 읽고 단어를 입에 굴려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뉴스 콘텐츠를 만드는 일의 실체는 언제나 빚을 지는 과정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인생을 받아쓰고, 혹은 누군가의 생각을 받아 조금 생각을 덧대고, 다른 이의 취재물을 발판 삼아 비슷한 사례를 찾고, 이도 저도 안 되면 포맷을 달리해보고…. 모든 순간이 창작과 거리가 있었다. 엔딩크레딧에 생략된 누군가의 희생과 노고를 생각하면 결과물을 ‘내’가 ‘만들어냈다’는 알량한 자부심은 사라지고 무거운 책임만 남는다. 어릴 땐 기자나 PD가 세상을 바꾸는 줄 알았다. 지금도 아주 다르게 생각하진 않지만, ‘세상을 바꾼다’는 표현을 떠올려보니 몸이 오그라들고 쓴웃음이 나온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그저 세상에 해로운 일을 덜 하려고 발버둥 치는 생활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변함없이 사람을 모으고 현장을 지키며, 구체적인 인생과 함께하는 이들 말이다. 언젠가 언론사 기자를 그만두고 활동가로 전업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매일같이 거리로 나서는 이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어릴 때 언론인이 조금은 양심을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활동가로 일하는 취재원을 알게 되었고, 세상을 ‘실제로’ 바꿔내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커리어가 쌓일수록 월급이 줄었다. 그러나 ‘평범한 쫄보’들과 ‘매일매일 혁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경제적 자유를 부르짖으며 자본을 축적하는 데 생의 모든 기운을 쓰는 시대에, 돈이 외면하는 곳을 지키는 사람들. 자꾸만 자극적인 이야기를 좇는 시대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사람들. 일에서 오는 가장 큰 기쁨은 그런 귀한 사람을 자주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느 위대한 학자도 해답을 주지 못하는 비관 가득한 이 시대에 자그마한 답이 있다면 오직 지치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는 이들에게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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