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수술 후 5년 동안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의료 사태로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자고 일어나니 속옷 상의에 피가 묻어 있었다. 밤중에 코피를 흘렸나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도 속옷에 소량의 피가 묻어 있었다. 이곳저곳 몸을 살펴본 결과 유방에서 피가 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020년, 코로나가 막 시작될 무렵의 일이다. 5년 전, 암 진단과 함께 빠른 수술 버스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는 대학병원을 찾았다. 봄밤이면 가로등 사이 이팝나무 꽃이 환하게 피어오르던 모습이 인상적인 병원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별일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고, 그에 따라 세침 검사를 하고 나니 가슴에 달궈진 쇠공을 매달고 있는 것 같았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자꾸 과거 친정 엄마를 간병할 때 병실에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젊은 사람이 암에 걸려 한 달 안에 죽었대.' 나는 서둘러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밖엔 나지 않았다.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내 인생도 허망했지만 철없는 아이들이 겪을 외로움을 생각하니 더 막막했다.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진료실에서 들었을 때, 아이들이 어리니 개학 전 서둘러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코로나로 개학이 늦춰지고 있었다. 많이 걱정하는 나에게 교수님은 그렇게 하자며 잘 치료될 테니 힘을 내자고 하셨다. 수술 전날 집 주변을 돌며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눈물이 사정없이 흘렀고 이제 마지막인가 싶었다. 그랬던 나는 암 수술 뒤 5년 동안 잘 살고 있다.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으며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가끔 여행도 한다. 살아있다는 것에 기쁨과 감사함을 느낀다. 퇴원 후에 나를 수술한 교수님의 일정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오전에 응급으로 수술해 주시고 오후에 진료를 보셨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입원 당시에는 너무 황망하여 그런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는 사전지식은 없었지만 통증과 초조함 때문에 수술을 서둘렀다. 암치료는 표준치료이기 때문에 돌아보니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되도록 빠른 치료의 시작이 생사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년째 감사함과 평온함이 긴장감으로 바뀌고 있다. '환자 반 의사 반'이던 병원이 달라졌다 지난 1년, 치료를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병원에서 나는 안심이 되는 동시에 불안감도 느낀다. 전에는 병원에 가면 '환자반 의사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련받는 젊은 의사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담당 교수님 밑으로 의사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가 거의 병원을 떠났기 때문이다. 환자로서 다시 협상이 잘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내가 수술할 당시에 지금처럼 의료 사태로 의사들이 떠나 수술이 지연되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다. 치료를 잘 받고 마친 날도 '오늘은 치료를 받고 가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지금 치료 못 받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고 우려가 된다. 병원 복도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수술 날짜를 잡지 못해 초조함에 발만 동동 구르는 가족들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고통 속에서 미뤄진 수술 날짜를 바라보고 있을 환우들의 눈물도 느껴진다. 의료 사태를 처음 뉴스로 접했을 때, 정부는 의료인력을 확충해서 지역의료를 강화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지방에 큰 병원이 없어 먼 곳에서 서울로 진료를 오니 취지는 이해되었다. 하지만 정부의 2000명 밀어붙이기식 일방적인 증원 추진에 전공의들은 반발했고, 그 여파로 결국 다 이탈해 버렸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의료 갈등은 일 년이 다 되도록 지속되고 대한민국 의료는 궤도를 이탈한 열차가 되었다. 내가 대학병원에서 본 의료란 단순히 지식만은 아니다. 학교에서 그저 공부를 해서 채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학생을 많이 배출하면 공부를 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지 의술이 있는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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