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렉스의 시대에 꿈꾸는 무소유 할머니의 부엌을 기억해 보라. 아궁이에 걸린 무쇠 가마솥 하나에 밥도 하고 국도 끓이고 전도 굽고 찜도 하지 않았던가. 아궁이의 검은 숯으로 생선도 김도 야무지게 구워내던 시절이었다. 늦게 귀가하는 가족을 위한 밥 한 그릇은 아랫목에서 식을 틈이 없었고 부뚜막은 항상 정갈해야 했으며 걸터앉는 것도 금기시되었다. 어머니의
ⓒ게티이미지뱅크할머니의 부엌을 기억해 보라. 아궁이에 걸린 무쇠 가마솥 하나에 밥도 하고 국도 끓이고 전도 굽고 찜도 하지 않았던가. 아궁이의 검은 숯으로 생선도 김도 야무지게 구워내던 시절이었다. 늦게 귀가하는 가족을 위한 밥 한 그릇은 아랫목에서 식을 틈이 없었고 부뚜막은 항상 정갈해야 했으며 걸터앉는 것도 금기시되었다. 어머니의 부엌은 어떠했었나. 전기와 가스가 부엌의 살림살이를 빛내 주어 밥은 전기밥솥이 알아서 척척해 주었고 가스레인지에선 찌개가 끓고 생선이 구워지고 있었다.
우리의 부엌, 주방은 어떠한가. 밥은 당연히 전기밥솥이, 끓이고 찌는 요리는 인덕션에, 겉바속촉을 위한 구이는 에어프라이어에, 아침식사를 위한 토스터, 캡슐커피를 소비해 줄 커피머신, 냉동밥을 데워줄 전자레인지, 어쩌다 가끔 브런치를 위해 필요한 와플메이커,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될 정수기와 식기세척기까지, 게다가 양문형 냉장고에 김치냉장고도 필수이다. 싱크대 안의 주방도구는 또 어떠한가. '이걸 내가 왜 샀을까'라는 후회와 '언젠가는 쓰겠지'라는 자기만족으로 서랍 구석에 뒹굴고 있는 물건들이 누구나의 주방마다 꼭 있을 것이다.우리네 할머니들은 무언가를 '버린다는 것'을 낭비로 여기던 시절을 사셨으나 차고 넘치는 짐들과 함께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버린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의 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잘 버리는 것에 대한 관심은 몇 해 전 미니멀 라이프 열풍이 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니멀리즘에 대한 관심보다 훨씬 이전 일본에서 시작된 정리, 수납 열풍은 지진이 잦은 문화적 특성과 간결한 삶을 추구하는 가치관이 만나면서 수많은 정리수납 책자가 출간되고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였다. 공간의 정리와 수납뿐만 아니라 복잡한 머릿속, 삐걱대는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버릴 것은 버리고 쓸 것은 잘 접고 칸칸이 구분하여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내가 되기 위한 것에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이제 정리와 수납에도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아졌다. 정리수납전문가는 누군가는 하고 있으나 별로 티 나지 않는 일을 돈을 지불해야 하는 서비스로 성장시켰고 이제 수만 명이 종사하는 직업군이 되었다. 이들은 가정을 비롯해 사무실, 학교, 매장 등에서 공간과 용도에 맞는 효율적인 정리와 수납 서비스를 제공하고 필요한 각종 용품을 추천하고 적절한 활용법에 대해 알려준다.
최근 정리수납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도 다수 개설되고 있고 지자체에서도 취약계층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정리수납 서비스를 연계하고 있기도 하여 '가사'의 영역으로 간주되던 '정리'는 점차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고 전문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폭우와 폭염이 반복되는 지금, 영원히 오지 않을 그 언젠가를 위해 수년간 옷장에 걸어둔 여름옷을 기꺼이 정리하는 용기를 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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