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는 대체 언제부터 우리의 여흥에 좋든 싫든 빠질 수 없는 술로 굳게 자리를 잡은 걸까?
바야흐로 송년회의 계절이다. 송년회에는 술이 빠지기가 쉽지 않고, 한국 사회에서 술이라면 소주가 빠질 수 없다. 그만큼 우리는 소주를 많이 마신다. 지난 9월 20일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5년간 주류 품목별 반출량 및 수입량 자료를 국세청에서 받아 분석했다. 2021년 국내 제조장에서 반출된 소주량은 82만5,848㎘, 360ml들이 병 기준으로 22.9억 병이다. 재고 회전이 빠른 주류 특성을 감안하면 국내 제조장에서 출고된 반출량은 소비량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결국 성인 1인당 평균 52.9병을 마신 셈이다. 어떤 소주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엿가락처럼 늘어날 수 있다. 원조 소주인 증류식의 역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과일의 당도가 높지 않았으므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곡물로 술을 담갔다. 익힌 곡물에 누룩과 물을 더하면 전분이 당으로 변해 미생물의 먹이 역할을 하고, 미생물은 신진대사를 통해 알코올을 생성한다. 이 과정이 발효이며 결과물이 술이다.
이런 희석식 소주가 1965년 박정희 정부가 개정한 양곡관리법 덕분에 ‘국민의 술’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쌀을 활용한 소주와 막걸리 양조가 전면 금지되고 그 빈자리를 희석식 소주가 채웠다. 쌀 공급의 부족이 명분이었다. ‘보릿고개’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당시 한국의 전반적인 농업 생산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1977년 쌀 자급이 이뤄지기 전까지 한국은 만성적인 쌀 부족 상태였으니, 밥도 채 지어 먹지 못하는 쌀로 술을 빚어 먹게 할 수 없었다. 한편 희석식 소주의 대중화에는 산업화 시기의 보호무역 정책도 기여했다. 1984년 맥주 수입개방이 이뤄지기 전까지 한국 주류업체들은 국내 시장을 경쟁 없이 장악하고 있었다. 1970년대 및 1980년대의 한국 주류 시장은 소주가 주를 이뤘지만 맥주 소비가 조금씩 늘어나던 상황이었다. 국내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증류주는 사실상 희석식 소주가 유일했다. 선택의 폭이랄 게 없었으니, 소비자는 있는 술에 입맛을 길들이게 되었고 소주는 친숙한 술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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