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의 민주주의는 그대처럼 밝고 생기 있길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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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현|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스피커를 타고 흘렀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포기할 수 없어~” 빼곡히 들어선 젊은이들의 합창에 며칠간의 우울이 밀려나고 희망의 전구가 켜졌다. 암흑

‘12·3 내란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이 이뤄진 지난 7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일대에서 시민들이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email protected]“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스피커를 타고 흘렀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포기할 수 없어~” 빼곡히 들어선 젊은이들의 합창에 며칠간의 우울이 밀려나고 희망의 전구가 켜졌다. 암흑 속에 빛을 받고 서 있는 연녹색 돔의 국회와 그 앞길을 메운 형형색색 응원봉, 수십만의 떼창이 어우러진 몽환적 분위기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도 이렇게 아름다울 거야” 약속하는 듯했다.

탄핵촉구 집회가 열린 7일 밤 여의도에는 20·30대 젊은층이 크게 늘었고 집회 문화도 달랐다. 누구는 정치집회의 ‘세대교체’라고 했고, 누구는 청장년 ‘세대통합’이라 했다. 케이팝 중간중간 후렴처럼 외치는 탄핵 구호를 타고 옆 사람의 따스함이 옮겨왔다. 하지만 밤공기는 찼고 발은 시렸다. “우리의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라고 깨우치듯이. 실제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조차 않고 몰려 나갔고,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국군통수권을 쥔 채 여전히 대통령 자리에 있다.같은 밤,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강연에서 노벨 문학상 작가 한강은 자신이 ‘견뎌온’ 두가지 핵심 질문에 관해 얘기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둘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래 믿었다 한다.

지난 일주일 우리가 보고 겪은 세상도 그러했다. 선잠에서 깨어 느닷없이 마주친 대통령의 사나운 표정과 날 선 담화. ‘척결, 처단, 포고문’ 같은 섬뜩한 단어들. 혹시 나도 저들이 긋는 ‘선량한 시민’의 금 밖에 나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순간의 자기검열. 카톡을 폭파하고 텔레그램도 지워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망설임. ‘피크 코리아’라더니 결국 그 어둡던 날로 돌아가는가 하는 아득함.이튿날부터 드러난 계엄의 동기와 과정도 기괴했다. 어이없게도 대통령은 극우 유튜버가 강변하는 선거부정론을 믿었다. 그는 군을 동원해 4월 총선이 부정선거라는 증거를 찾아 자신의 확증편향을 입증하려 했다. 이후 국회를 해산하고 무수한 정적을 지하 감옥에 가둔 채 나라를 유신 시대로 돌리려 했다. 공화국에서 왕이 되려 획책한 자를 보고도 여당 대표라는 한동훈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들게 했다.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가 판단 기준일 뿐 원칙과 국민은 안중에 없어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또 보았다. 목숨이 걸린 줄 알면서 그 밤에 국회로 달려 나간 시민들. 집기를 쌓으며 특수부대의 진입을 늦춘 국회 직원들. 가로막는 시민들 앞에서 눈동자가 흔들리고, 일부러 천천히 움직이던 군인들. 엄청난 과오에 연루됐음이 드러난 뒤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눈물로 참회하는 현장 지휘관들. 그들도 무서웠고, 갈등했을 것이다. ‘그냥 있을까 나가볼까, 명령을 따를까 시민 편에 설까’ 오락가락했을 것이다. 그들이 존엄함을 보여줬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딜레마적 상황에서 양심의 소리에 따라 한발 내디딘 데 있다. 현대사의 참혹했던 기억들이 우리에게 내적 갈등 속에서 선택할 힘을 길러줬는지 모른다. 우리가 그 밤에 80년 광주의 그 잔혹한 군인들을 다시 맞닥뜨리지 않은 건, 한강 작가의 말대로 광주라는 보편적인 공간에 찾아온 ‘소년’ 덕분일 것이다.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온 시민들. 같이 못 해 미안하다며 카페와 식당에 선결제하는 이들.

내란 주범 윤석열은 탄핵이든 하야든 물러날 것이다. 그러면 정치인들은 몸을 돌려 다음 대통령 뽑기에 몰두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이번에는 이렇게 멋진 시민, 달라진 젊은 세대에게 맞는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이야기해야 한다. 극단이 득세하는 정치, 그래서 급기야 민주적 소양이 전혀 없는 자가 대통령까지 오를 수 있는 낡은 옷은 이제 벗어던져야 한다. 그게 시민들이 두번이나 찬 바람 부는 거리에 나선 뜻이다. 부디 새봄의 민주주의는 이 광장을 메운 젊은이들의 소망과 생기가 환하게 피어나는 그런 것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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