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순창 두지마을 앞 들녘은 쭉 뻗어 섬진강까지 닿았다. 마을 뒤 야산엔 대나무 숲이 우거졌다. 김녕 김씨들이 모여 사는 동네다. 197...
1970년대만 해도 120여가구가 살았다. 야산에는 대나무가 아니라 집들이 빼곡했다. 마을이 크다 보니 우물이 2개 있는데, 윗 우물 쪽에 살면 ‘웃물 산다’, 아래 우물 쪽에 살면 ‘아랫물 산다’고 했다. 주민들은 마을 앞 들판에서는 벼농사를 짓고, 물 빠짐 좋은 강변에는 ‘무시’를 심었다. 마을 입구에 양곡 창고 딸린 농협연쇄점이 있을 정도로 크고 부유한 동네였다.
지난해 11월27일 아침 8시30분.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경로당 요리사’ 미순·순금 아짐이 마을 앞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순창에 대설주의보가 발령됐다. 서울에선 117년 만에 11월 중 최대 적설량을 기록한 날이다. 결국 장을 보려면 순창읍으로 나가야 한다. 매월 1과 6으로 끝나는 날 읍내에 장이 선다. 장날에는 순창군 내 모든 버스가 운행 노선을 바꿔 장터를 지난다. 장날엔 인근 버스터미널 승차장에 간이의자가 여러 개 놓인다. 장을 본 어르신들은 “ 어차피 집에 가도 논다”며 의자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한다. 남편은 서 마지기 논에서 벼농사를 했다. 서 마지기로는 육남매를 키우기 힘들었다. 머리에 생강 바구니를 이고 읍내 가서 팔았다. 무시 장사도 했다. 칫솔 공장, 메리야스 공장, 고추장 공장, 식당 등을 다니다 요양보호사가 됐다. 최저시급이지만 돌보는 대상자가 많으면 일하는 시간도 길어져 공공일자리보다 더 높은 급여를 받는다. 가까이는 순창 유등면부터 멀리는 남원 대강면까지 일하러 다녔다. 남편은 2002년 세상을 떠났다.
부부는 논 여러 배미를 빌려 총 60마지기 땅에서 친환경 벼농사를 지었다. 순창에서 60마지기면 ‘중농’ 정도 되는 규모다. 아내 김선영씨는 농사일을 마치고 저녁마다 순창읍 보습학원으로 달려가 강사로 일했다. 지난해 11월24일. 두지마을에서 면 소재지 방향으로 10분쯤 걸으니 4층짜리 아파트 두 동이 나타났다. 두지마을 주민들이 다녔던 오산 국민학교가 1999년 폐교된 후, 운동장 부지에 세워진 주공아파트다. 경비실에 이용희씨가 앉아 있었다. 그는 두지마을 이장이다. 경기 화성 동탄에 살다가 13년 전 이주해 아파트 경비로만 10년을 일했단다.농촌에서 농사 안 짓는 이장이라니…. 생경했다. 이씨가 모니터 화면에 풍산면 지도를 띄우더니 한 곳을 확대해 보여줬다. 경비 일을 시작했을 무렵 이곳 땅 200평을 겨우 구해 복분자를 심었다고 했다. 경비는 격일로 하고 농사는 쉬는 날 지었다. “밭은 일이 많아요. 쉬는 날 밭일 하러 가야 하는데 중간에 마을 일도 하고 행사도 가야 하고…. 이런 데 쫓아다니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도 밭에 못 갈 때도 있었어요.” 복분자 농사는 3년 만에 관뒀다.도시에 살던 이들이 농촌에 가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3년 전부터 순창의 사회적협동조합 ‘우리영화만들자’와 함께 영화 제작 수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6월에는 전교생이 참여한 8분짜리 판타지 영화 이 학교 강당에서 상영됐다. 영화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인 풍산초 학생이 ‘색깔 요정’을 만난다. 교실을 칠하는데, 빨강·노랑·파랑 등 색이 달라질 때마다 학생들의 감정이 변한다. 한 가지 색깔이 아닌 모든 색이 한데 어우러질 때 가장 행복해진다는 얘기를 담았다. 시나리오는 풍산초 학생들이 공동으로 썼고, 배역도 풍산초 학생들이 맡았다. 자민이도 ‘기차놀이 하는 학생’ 역할을 맡았다. 자민이가 손으로 커다란 나무 모양을 그리고, ‘반짝반짝’ 손짓을 하니 아이들이 “꺼이통”이라고 말했다. 긴 수염이 나 있고 커다란 선물 주머니를 들고 가는 사람은 “옹자 노엔”, 이 할아버지가 타고 다니는 무언가는 “쯔엇 두엔”이다. 센터에서는 중국 문화 수업도 진행한다.다른 곳을 가면 내 나이 언저리 되는 분들이 ‘노총각’이 되면서 이주여성하고 많이 결혼했어요. 근데 우리 마을은 그 나이대 되는 남자도 없었던 거죠. 다 도시로 나가고. 유등면에는 베트남 여성들이 있어요. 금과면엔 통일교 순창 교회가 있는데 일본 여성 신도들이 살아요.
지난달 10일 두지마을 아짐이 보건진료소를 찾았다. 왼쪽 발에 깁스를 했다. 김장 때 삐끗해서 왼쪽 발가락을 다쳤단다. “이미 나샀다. 불편해서 얼른 풀고 싶다” “어머니 있잖아요. 풀면 다시 뼈가 어긋나요. 안 돌아다니셔야 하는데 자꾸 돌아다니시니까 이렇게 단단히 싸매버린 거예요” “안 움직일 수가 있나” “긍께 어머니 저녁에 꼭 다리를 올리고 주무세요. 붙으면 병원에서 빼주실 거예요.”어르신들에게 생각보다 우울증이 엄청 많으세요. 여기서 처방은 못하지만 여쭤보면 불안장애 약, 불면증 약도 많이 드시고요. 남편과 자식이 먼저 세상을 뜬 분도 많고요. 두 집 걸러 빈집인 마을이 많아요. 혼자 자는데, 잠도 오지 않는데 빈집에서 바스락바스락하는 소리까지 들려봐요. 신경이 곤두서죠15년 전만 해도 두지마을은 정월대보름이면 마을회관에 제사상을 차리고 당산제를 지냈다. 한 해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지내는 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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