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까 살아갈까, 두지마을에서의 한 달 [남태령을 넘어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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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까 살아갈까, 두지마을에서의 한 달 [남태령을 넘어②]
두지마을에서의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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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 두지마을 앞 들녘은 쭉 뻗어 섬진강까지 닿았다. 마을 뒤 야산엔 대나무 숲이 우거졌다. 김녕 김씨들이 모여 사는 동네다. 197...

전북 순창 두지마을 앞 들녘은 쭉 뻗어 섬진강까지 닿았다. 마을 뒤 야산엔 대나무 숲이 우거졌다. 김녕 김씨들이 모여 사는 동네다. 1970년대만 해도 120여가구가 살았다. 야산에는 대나무가 아니라 집들이 빼곡했다. 마을이 크다 보니 우물이 2개 있는데, 윗 우물 쪽에 살면 ‘웃물 산다’, 아래 우물 쪽에 살면 ‘아랫물 산다’고 했다. 주민들은 마을 앞 들판에서는 벼농사를 짓고, 물 빠짐 좋은 강변에는 ‘무시’를 심었다. 마을 입구에 양곡 창고 딸린 농협연쇄점이 있을 정도로 크고 부유한 동네였다.

두지마을을 지나는 시내버스는 하루 8대뿐이다. 버스 타면 20분 정도 걸린다. “이렇게 불편한데 차 없이 어떻게 살아요” 묻는 기자에게 미순 아짐이 말했다. “차는 많이 다니제. 옛날엔 아침에 두 번, 저녁에 두 번밖에 없었어. 그땐 걸어다녔응께.” 성인이 빠른 걸음으로 가도 1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다. 마을 입구 주차장에 마티즈가 없으면 아짐들은 “혜숙이네 일 갔나 보네” 한다. 혜숙은 정순 아짐의 첫째 딸이다. 혜숙이라는 이름을 지어놨는데 면사무소에 간 친정아버지가 ‘미자’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했단다. 본명은 ‘미자’지만, 두지에서는 ‘혜숙이’라고 부른다.

“내가 안 갔으면 며칠 계셨을 수도 있제. 나도 혼자 있으니께 이런 생각이 계속 들어. 자다 죽어 불지도 모른다고. 집안일 하기 싫어서 옷도 막 벗어놓고 그럴 때가 있거든. 근디 내가 갑자기 죽어 불면, 사람들이 보고 ‘전정순이 이렇게 살았나’ 하면 우째. 그래서 깨끗하게 치워놓고 허는디….”이 마을엔 40·50·60대 ‘청년’도 있다. 33가구 중 9가구다. 이 마을에서 짧게는 7년, 길게는 36년 살아온 귀농·귀촌인들이다. 서울 살던 김효진·김선영씨 부부는 처음에는 순창 금과면으로 귀농했다가, 너른 들녘에 반해 두지마을로 왔다.

남편 김씨는 그때부터 산불감시원 일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논두렁을 태우거나 쓰레기 태우는 것을 단속하고, 불이 나면 진화 작업까지 맡는다. 봄에 3개월 반, 가을엔 한 달 반가량 하는 한시적 일자리이지만, 월급으로 180만~190만원 정도 받는다. “시골에선 그만한 돈벌이가 또 없어요. 경쟁률이 엄청 높아서 우스갯소리로 ‘군수 빽’ 있어야 한다고도 하죠.” 아내 김씨도 학원 강사를 그만두고 몇년 전부터 면 소재지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계약직 관장으로 일한다. 3년 전부터 순창의 사회적협동조합 ‘우리영화만들자’와 함께 영화 제작 수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6월에는 전교생이 참여한 8분짜리 판타지 영화 이 학교 강당에서 상영됐다. 영화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인 풍산초 학생이 ‘색깔 요정’을 만난다. 교실을 칠하는데, 빨강·노랑·파랑 등 색이 달라질 때마다 학생들의 감정이 변한다. 한 가지 색깔이 아닌 모든 색이 한데 어우러질 때 가장 행복해진다는 얘기를 담았다. 시나리오는 풍산초 학생들이 공동으로 썼고, 배역도 풍산초 학생들이 맡았다. 자민이도 ‘기차놀이 하는 학생’ 역할을 맡았다.

박붕서 풍산초 교장은 “학부모들이 읍내에 더 많으니까 학교가 지역 주민들과의 연결 지점이 없어지고 있다”며 “이젠 면 지역에서 초등학교 폐교는 얘깃거리도 안 될 정도”라고 했다. 농부이자 작은 도서관장인 김선영씨는 딸 승하가 풍산초를 졸업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매주 목요일이면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러 간다. 김씨는 “지역을 누구보다 잘 아는 주민들이 학교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이날 자민이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읍내에 있는 돌봄센터로 갔다. 돌봄센터는 일하는 부모들을 위해 초등학생 자녀들을 돌봐주는 곳이다. 풍산초 예술제에서 영상 제작 소감을 발표한 학생들도 있었다. 몇몇은 이주배경 아동이다.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 베트남 문화 수업을 진행했다. 한 아이가 칠판 앞으로 나와 온몸으로 단어를 설명하면, 다른 아이들이 베트남어로 정답을 맞히는 ‘몸으로 말해요’ 게임이 시작됐다.

‘이장 딸’ 채은도 중·고등학생 때 인재숙 생활을 했다. 엄마 전혜경씨가 말했다. “식대만 내면 밥 주고 재워주고 공부 가르쳐주고 완전 거저지. 채은이 가르칠 때 돈이 많이 안 들어갔어요. 거기 가 공부만 하는 애들이 불쌍하긴 한데…. 그래야 성적도 오르니까 우리나라 현실에는 맞지 않나 생각도 해요.” 이 마을 보건진료소장은 10년 전 순창에 와서 오지 보건진료소 여럿을 돌아다녔단다. “어르신들에게 생각보다 우울증이 엄청 많으세요. 여기서 처방은 못하지만 여쭤보면 불안장애 약, 불면증 약도 많이 드시고요. 남편과 자식이 먼저 세상을 뜬 분도 많고요. 두 집 걸러 빈집인 마을이 많아요. 혼자 자는데, 잠도 오지 않는데 빈집에서 바스락바스락하는 소리까지 들려봐요. 신경이 곤두서죠.”15년 전만 해도 두지마을은 정월대보름이면 마을회관에 제사상을 차리고 당산제를 지냈다. 한 해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지내는 제사다. 원래는 마을에서 농악 가락에 맞춰 당산나무가 있는 마을 뒤 야산까지 올라 제를 지냈는데, 주민들이 나이 들면서 마을회관에서 간소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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