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지난주 네덜란드에 다녀왔다. 우리 연구원과 헤이그전략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한국-네덜란드 간 싱크탱크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말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 계기로 양국 외교장관이 3년짜리 공동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13일 암스테르담 크라스나폴스키 호텔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비즈니스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연합뉴스지난주 네덜란드에 다녀왔다. 우리 연구원과 헤이그전략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한국-네덜란드 간 싱크탱크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말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 계기로 양국 외교장관이 3년짜리 공동연구 프로그램 발족에 합의했다. 첫해인 올해 주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회복탄력적 공급망 구축을 위한 해양안보’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경제·군사 분야 전문가들이 올 초부터 책을 집필해왔고, 그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 헤이그에 모였다.
우리나라와 네덜란드가 협력하게 된 배경에는 세계 경제 질서의 급격한 재편이 자리한다. 미-중 전략경쟁, 팬데믹, 전쟁 등으로 인해 보호무역의 진영화, 파편화가 가속되고 있다. 마치 냉전 시대처럼 진영이 나뉘어 가치와 이해가 맞는 국가 간 이합집산이 이뤄진다. 양 진영의 중심에는 미국과 중국 같은 초강대국이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중견국들은 눈치껏 한쪽 편을 들면서도 자국 생존에 도움이 될 만한 다른 파트너를 찾기에 분주하다. 이른바 ‘유사입장국’과 교류 범위를 넓히는 건 지금의 세계 경제 지형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자유진영에 속한 교류 상대국으로서 우리나라는 제법 인기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에,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원자력 발전 등 전략적 가치가 높은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비교적 안정됐고 인적 자본 수준도 높다. 음악, 영화, 드라마, 문학까지 한국 문화의 위상은 날마다 커지고 있다.
이번 네덜란드행도 그 일환이었다. 유럽에서 신뢰할 만한 파트너를 찾고 있는 우리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싶은 네덜란드의 입장이 잘 맞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이 재구성되고 중동 지역 분쟁으로 물류비용이 증가하는 등 전통적 군사안보가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게 최근 글로벌 지정학의 현실이다. 특히 전략적 중요성이 큰 인도·태평양 지역의 공급망 안정과 해양안보 강화는 네덜란드와 우리나라의 이해가 집중되는 영역이다. 의미 있는 협력 의제를 도출하기 위해 행사에 참석한 전문가들 사이 진지한 토론이 오갔다.다음날, 귀국 전 잠깐 시간이 남아 헤이그를 둘러봤다. 헤이그에 오면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곳이 이준 열사 기념관이다. 개장시간에 맞춰 찾아가니 노구의 기념관장께서 열정적으로 안내해 주셨다. 1907년, 고종은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고발하기 위해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세명의 특사를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에 파견했다.
그로부터 백년이 훌쩍 넘게 지난 지금, 한국은 예전처럼 배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중요한 파트너라며 여기저기서 협력하자고 연락이 온다. 별 볼 일 없는 나조차도 국책연구원 유럽팀에 있다는 이유로 한해 동안 독일, 벨기에, 체코, 네덜란드에서 열린 각종 행사에 불려 다녔다. 가는 곳마다 외국인들이 케이팝 좋아한다고, 흑백요리사 재미있게 봤다고, 한강 작가 대단하다고 난리다. 네덜란드에서 귀국해 보니 전세계 사람들이 “채영이가 좋아하는 랜덤게임 아파트 아파트”를 익숙한 한국 발음으로 외치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그렸던 미래가 이런 것이었을까, 생각했다.
물론 우리나라가 헤쳐가야 할 난관이 여전히 많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에 세계 경제 질서 재편은 커다란 도전이다. 이번 분기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경제성장률은 앞으로 위기의 전조증상일지 모른다. 남북 간 전쟁의 언어가 오가는 사이, 북한군이 러시아에 파병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리가 자랑했던 경제적, 정치적 안정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백년 전 독립운동가들이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지금 우리나라에 이뤄진 것처럼, 앞으로의 미래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저절로 오지 않을 밝은 미래를 위해 비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스스로 힘을 키우고 협력할 우방을 찾으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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