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박치호와 아들 박원근... 학살 되고 평생 경찰 감시 받아
산외지서장 신아무개는 산외국민학교에서 좌익계 청년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면 과거에 남로당에 가입했던 죄를 깨끗이 씻어 주겠다"며 그가 내민 서류에는 '보도연맹 가입서'라는 제목이 있었다. 그곳에 모인 청년들은 특별한 의구심 없이 서류에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한국전쟁 전 보도연맹원들에게 '대한민국의 역군이 되게 해 주겠다'던 약속은 정작 전쟁이 터지자 휴지쪼가리가 되었다. 전쟁이 나자 육군 G-2대원 10여 명이 보은으로 와 수리조합 사무실을 본부로 삼아 보도연맹원들을 심사했다. 당시 보은군 보도연맹원 명부는 충청북도 경찰국, 보은경찰서, 보도연맹 사무실에 있었는데, G-2 대원들이 보도연맹 사무실에 있던 명부를 압수해, 살생부 작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박원근은 중앙고등보통학교를 퇴학한 다음 해인 1931년 12월 말 삼인회 사건으로 본정경찰서에 검거되었다. 공산주의 제도의 실현을 목적으로 조직된 '삼인회'는 삼인, 신로를 비밀리에 출판해 회원 등에게 배부했다.
박원근과 그의 동지들은 항일 비밀 결사체 '신인구락부'를 조직해, 반전사상과 지원병제도 반대를 선전하고, 일본이 패전할 것임을 역설했다. 그는 이러한 활동으로 검거되어 1941년 10월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의 판결을 받았다.식민지 시절 내내 항일독립 운동에 애를 쓴 박원근은 해방 후부터 정치·사회운동과는 거리를 뒀다. 가정생활에 몰두한 그는 그렇다고 자신의 젊었을 적 꿈꾸었던 가치를 포기하지도 않았다. 즉 '과거의 죄를 뉘우치고 대한민국에 충성을 바친다'는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것이다. 청산지서에 예비검속된 보도연맹원들은 당일 저녁까지 지서 유치장에 구금되어 있다가 GMC 트럭에 실려 어딘가로 갔다. 지서로 연행된 이후 74년이 지난 여태까지 감감무소식이니 정확한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청산지서를 포함한 옥천군 내 지서에 소집된 보도연맹원들이 동이면 평산리, 군서면 월전리 말무덤재, 용머리바위 등지에서 학살되었기 때문에 최양순도 같은 운명에 처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원근 집안의 전쟁 고통은 이로써 끝난 것이 아니었다. 박원근의 동생 박원홍은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 수학물리학과에 입학했다. 1946년 학원계의 뜨거운 이슈였던 국대안 반대 투쟁에 참여했다. 전쟁 전 보은농고 수학 교사와 서울 명성여고 교사를 한 그는 한국전쟁 발발 후 의용군에 입대했다. 그때 이후 그의 소식은 두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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