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그라들기만 하던 백제 고도(古都)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활기를 띠게 된 걸까요?
편집자주소멸 위기를 극복 중인 지역 이야기를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압축적으로 다룹니다.
1932년엔 충남도청까지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돈과 사람이 빠지기 시작했고, 10여 년 전 행정중심복합도시를 표방한 세종시까지 바로 옆에서 인구를 빨아들이자,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도시가 됐다. 공주대, 공주교대, 공주사대부고, 한일고, 충남과학고등 전국구 학교를 보유한 교육도시 공주는 지금도 충청권은 물론 전국에서도 청년들이 찾는 곳이지만, 거기엔 뚜렷한 패턴이 있었다. 오로지 학교 때문에 사람이 늘었다는 점이다. 학교의 입학과 학생들의 전입 신고가 이뤄지는 3월까지는 인구가 늘다가, 4월부터 연말까지 줄곧 감소하는 것이 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 6개월 중 5월 한 달을 제외하고는 인구가 늘었다.
근처엔 다소곳한 자태로 눈길을 끄는 건물이 많았다. 전시관으로 활용되는 옛 공주읍사무소, 서울의 광화문 같은 느낌의 충청감영터와 공주제일교회, 하숙마을, 여관을 리모델링한 산뜻한 숙소, 한옥 게스트하우스도 발길을 잡아 세웠다. ‘이런 곳에 이런 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카페와 북카페, 공유오피스, 갤러리, 와인바도 눈에 띄었다. 이곳은 반죽동과 봉황동, 중동, 중학동이라는 법정 동명에도 불구하고 ‘제민천 마을’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 전국 각지에서 여기로 와 눌러앉은 청년들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서울살이를 접고 온 대구 출신의 박진서, 윤재서, 장원희씨는 이구동성으로 “소득은 줄었지만, 이곳에서 덜 외롭고, 더 넓은 곳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방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텃세가 이곳에선 없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10년 도심재생, 드디어 빛코로나19가 유행하던 2년 전 서울에서 가족과 공주로 이주한 공연 제작사 대표 조성호씨도 “이주민에게 열려 있고, 새로운 파이를 만드는 청년들을 환대하는 모습에 용기를 얻었다”며 “서울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조 대표를 포함한 공주 이주 청년들은 대부분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사업 등 중앙부처와 지자체의 거주 지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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