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리본 풀리고, 바래고, 끊어져도…고쳐매는 이들이 있다[세월호 10년, 함께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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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리본 풀리고, 바래고, 끊어져도…고쳐매는 이들이 있다[세월호 10년, 함께 건너다]
바래고끊어져도…고쳐매는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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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이 TV를 틀어 보여줬어요.”(권민지씨) “전원 구조라 해서 안심했는데, 오후에 오보라는 소식을 접했어요.”(남호원씨) “직장에서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처음 ‘노란 리본’을 달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목숨을 잃은 304명을 잊지 않겠다던 10년 전의 다짐은 여전한가요. 전국의 많은 시민이 보고, 달고, 만들었던 현실의 노란 리본은 세월이 지나는 사이 풀리고, 바래고 , 끊어졌지만 여전히 시민들 마음속에 각각의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남 진도 팽목항과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에도 발길이 이어졌다. 수학학원 강사인 조민호씨는 참사 1년 후 학교 프로그램으로 팽목항을 찾았다. 조씨는 추모공간에 놓인 또래들의 영정사진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는 “‘즐겁게 수학여행을 떠나던 친구들이 세상을 떠났구나’ 싶어 감정이 이입됐다”며 “여전히 커다란 배나 항구가 보이면 세월호가 생각난다”고 말했다.참사를 기점으로 삶이 달라진 이들도 있었다. 안산에 거주하는 임윤희씨는 참사 후 생애 처음 집회에 참여했다. 한 단원고 희생자의 장례식장에 걸린 앳된 영정사진은 큰 충격으로 남았다. “우리 사회의 생명·안전을 돌아보게 됐다”는 그는 이후 시민단체 상근 활동가가 됐다. 추모 열기는 수년간 계속됐다. 직장인 황모씨는 “식당에 가도, 학교에 가도, 길에서도 리본을 나눠주던 시절이 있었다”고 기억했다.그 많던 리본은 어디로 갔을까. 세월이 흐르며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이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리본을 잊지 않은 이들도 있다. 여수에 거주하는 김지순씨는 휴대전화 케이스에 노란 리본 스티커를 덧대며 지난 10년을 보냈다. “단 한 번도 세월호 참사를 잊은 적 없다”는 그는 “다른 사람들도 잊었다기보다는 너무 슬픈 마음에 생각을 묻어둔 것 같다”고 했다. 출근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단 직장인 염모씨는 “가방을 여닫을 때마다 생각이 난다”며 “다른 사람들이 제 등에 달린 리본을 볼 때 한 번쯤 세월호 참사를 생각했으면 해서 달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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