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동 성폭력 피해자입니다 아동_성폭력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친족_성폭력 PTSD 이주연 기자
그녀는 발바닥에 닿던 차가운 감촉, 읽던 책을 모아놨던 작은 방, 그 방안에서 나던 입김을 기억하고 있었다. 안방에는 다홍색 큰 꽃이 그려진 이불이 깔려 있었고, 겨울 추위를 피하기 위해 이불 안에서 TV를 봤던 일곱 살의 자신을 기억했다. 그리고, 이불 아래로 자신을 만졌던 축축하고 뜨거운 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1992년 서울 신정동의 추운 집에서 시작된 성폭력은 사당동 아파트, 그 사람이 살던 단칸방까지 이어졌다. 강제추행과 준강간의 성폭력은 가해자의 딸이 태어난 즈음에야 멈췄다. 지안씨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된 1994년 9월경의 일이다.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에게 피해사실을 처음으로 얘기했다. '하고 싶은 얘기를 해보라'는 질문에 튀어나온 말들이었다. 선생님은 바로 엄마에게 전화했다. 집에 돌아온 지안씨는 엄마에게"모두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엄마는"어디를 만졌는지, 몇 번이나 그랬는지"를 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안씨네 가족은 이민을 떠났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매일 악몽을 꿨고, 이유 없이 몸이 아팠으며, 살아있는 것 자체에 비참함을 느꼈다고 했다. 1년 후, 그녀는 부모에게서 독립했다. 그리고 삶을 끝내려 했다. 자살을 시도했던 딸을 향해 엄마는 말했다."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지안씨는"아직도 성폭력 당하는 악몽을 꾼다"고 했다. 며칠 후 가해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미안하다고 했다. 2019년 한국으로 돌아간 엄마는 이전보다 더 자주 이모 얘기를 했다. 이모가 얼마나 착한지, 얼마나 행복할 자격이 넘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럴 때마다 지안씨는"난 이미 불행하니까, 내가 어떻게 되든 남들까지 불행하게 만들면 안 된다"고 느꼈다고 했다. 2022년 1월, 또 다른 이모 윤희에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했다. 윤희 이모는 다음 날 가해자에게 연락해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했다. 그러나 지안씨는 가해자와 통화할 자신이 없었다.
제가 앓고 있는 병증 가운데 목구멍과 혓바닥이 계속해서 경련을 일으키며 말리는 증상이 있어요. 박사님이 '너의 목소리를 너무 오래 잃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고소장을 접수하고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혓바닥 경련 증상이 나아졌어요."지난해 10월, 그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가해자를 고소했다. 그리고 지난 5월 가해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5월 19일 이후 여러 차례 와 서면·전화인터뷰를 진행한 것도 '목소리 내기'의 일환이었다. 지안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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