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1921~1968)이 남조선노동당(남로당) 당원이자 문학가동맹(문맹) 맹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
김명인 인하대 국문학과 교수는 ‘황해문화’ 가을호에 ‘전향한 남조선노동당원 김수영을 위하여’를 기고했다. 조은정 성균관대 동아시아 역사연구소 연구원이 찾은 ‘탈당성명서’를 실마리로 글을 풀어갔다.“본인은 해방 후 남로당과 문맹에 가입하였으나 본의 아님을 깨닷고 탈당하는 동시에 대한민국에 충성을 다할 것을 자에 성명함. 4282년 11월 18일 충무로 4가 36의 17호 김수영”.이 주소는 김 시인 가족이 경영한 ‘유명옥’이라는 설렁탕집 주소다. 김 시인은 1946년 4월에서 1950년 4월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김 교수는 탈당성명서 게재 전후 시인의 생애와 시 세계를 좇아간다. 김 시인은 재전향과 재재전향을 거쳤다. 1950년 8월 3일 인민 의용군에 참여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서울에 남아 있다가 월북이나 입산은커녕 최소한의 투쟁도 하지 않고 전향 선언을 해버린 자신을 반성”하며 자원한 것이다. 9월 28일 훈련소를 탈출했다가 인민군에게 붙잡혔다. 10월 11일 재차 탈출해 10월 28일 서울 충무로 집 근처까지 왔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11월 11일 거제 포로수용소에 갇힌 뒤 석방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성원권을 인정받는 과정으로 이는 재재전향”이다.
김 시인은 “사회주의 자체에 대한 동경이나 신뢰는 오랫동안 포기”하지 못했다. “4·19 혁명과 쿠바혁명에 대한 그의 과잉에 가까운 흥분과 몰두, 그 못지않게 과격한 시 작품들”을 예로 들며 “4·19 혁명 이후 매우 적극적으로 사회주의적 비전을 드러냄으로써 여전히 반공 냉전주의를 기조로 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위험한 이단적 모험을 감행했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5·16 군사 쿠데타 이후 “사회주의적 비전은 정치·사상적 맥락에서 분리”된다. “대신 자신의 혁명적 비전을 시와 생활이라는 맥락에서 표현하는 데 진력”한다. 김 교수는 “김수영은 과연 사회주의자였던가” 묻는다. “탈당 성명도 포로수용소에서의 선택도 5·16 이후의 정치적 침묵도 결코 진정한 전향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는 죽을 때까지 사회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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