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의 성장 이야기 '마을이 도시로'] 도시가 되다
삼천포에 기선이 처음 운항하기는 1905년의 일이다. 일본인이 삼천포 출입 본격화한 것도 이 무렵일 것으로 짐작한다. 다만 등에서 삼천포의 개항 시점을 1906년으로 보는 데는 일본인 사업가 오노 이쿠지의 영향이 큰 듯하다. '경남의 자동차왕'이라는 별명을 지닌 오노 이쿠지는 그해 10월에 선박 운송 업체인 '오노회조부'를 삼천포에 설립했고, 이때부터 일본인이 삼천포에 눌러앉기 시작했다.
이때의 사천군 전체 인구는 2만6837명이었다. 삼천포의 인구는 다시 1918년에 8249명, 1930년에 1만3898명으로 증가했다. 1930년의 삼천포 거주 일본인은 553명이었다. 이 시기에 사천군 전체 인구는 6만9101명이며, 이 가운데 한국인은 6만7579명, 일본인은 1467명, 그 외 56명이다. 1914년에 옛 곤양군이 사천군과 통합하면서 삼천포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예나 지금이나 인구 증가는 교통의 발달과 불가분이다. 1905년 기선 운항을 시작으로 부산, 마산, 통영, 여수, 목포 등지를 잇는 뱃길이 열렸다. 뱃길로 삼천포에 닿은 사람들, 그들 중 상당수의 최종 목적지는 진주였다. 이런 까닭에 삼천포와 진주를 잇는 도로, 이른바 삼진가도라 불리는 신작로가 일찍이 놓였다. 1909년 12월의 일이다. 이듬해부터 객마차 6대, 소달구지 13대, 인력거 3대 등이 이 길을 오갔다.
지역민들의 오랜 청원 끝에 조선총독부는 1927년에 김삼선 부설을 결정한다. 삼천포-진주-산청-안의-거창-지례-김천을 잇는 노선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행되지 않는다. 1931년에 일본이 만주와 전쟁을 일으키면서다. 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만주를 중심으로 대륙 철도 건설에 열을 올리면서 김삼선은 늘 뒤로 밀렸다. 2차 매립지는 삼천포중앙시장 주변이다. 대략 77번 국도의 동쪽, 나무전길의 북쪽, 건어시장길과 중앙시장1길의 서쪽, 중앙로와 갈대샘길의 남쪽이다. 이곳은 당시 갯벌과 갈대숲이었다. 매립지의 북동쪽 끝자락에 있는 갈대샘이 그 흔적이다. 이곳을 메우기 전까지는 한내천의 끝은 여기에 닿았다. 그러나 바다를 메우면서 새로운 물길이 필요했고, 조선총독부는 팔포지구를 잘라내어 오늘날과 같은 새 물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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