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가난과 학교에 가기 어려웠던 경험을 딛고 서예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중학교 미술 시간에 처음으로 붓을 들었습니다. 벼루에 먹을 갈 때의 풍겼던 먹내음이라니. 그로부터 40년 동안 서예를 했습니다. 붓에 먹물을 묻혀 뾰족해진 붓끝을 화선지에 대고 써 내려가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잡념이 없어지고 생각이 비워지는 느낌입니다. 서예문인화는 나의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먹내음과 붓끝의 떨림, 그리고 화선지 위에 새겨진 글자들 속에 담긴 내 인생의 흔적입니다. 붓을 잡는 손은 이제 나에게 신체 일부가 아닌 삶의 이야기와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체입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싱아 나는 충남 서천의 한 외딴 마을, 문산에서 자랐습니다. 그곳은 약 13㎞ 더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깊은 산골짜기였지요. 그야말로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날 길 없는 지역적 환경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배를 채우기 위해 산과 들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에 배가 너무 고픈 형님이 길가에 자생하는 싱아를 뜯어 먹고 복통을 호소하며 업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평생을 강한 모습만 보여주셨던 우리 아버지가 처음으로 눈물 흘리시는 걸 봤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가족에게 끈끈한 사랑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야생에서 자란 어린 시절 나는 가난한 농부의 셋째로 세상에 태어나 그저 잡초처럼 자랐습니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다닐 수 있었지만, 중학교는 육성회비라는 거대한 벽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산골에 무슨 돈이 있어 육성회비를 낼 수 있었겠습니까. 그 당시에는 학교에 낼 돈을 내지 못하면 마치 죄인처럼 다루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맞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했던 때였으니까요. 나는 종종 교실에서 쫓겨나 학교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곳은 어쩌면 나에게 작은 안식처가 되어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들이 수업을 받는 동안, 나는 봄바람이 꽃내음을 실어나르는 향기에 취해 나만의 세상에 잠기기도 했고, 나무의 속삭임이 전해주는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들이 꽤 많았어요. 학교가 파할 때면 그제야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친구들과 같이 귀가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교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자기들끼리 얘기할 때는 어떤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경험들이 오히려 삶의 궤적이 되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공부에 대한 열망과 함께 사회에 대해 불평등함이 겹쳐져 슬슬 오기가 발동되더군요.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이루고야 만다'라는 인내심을 기르게 됐습니다. 집배원, 배움의 시작이었다 고등학교는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주위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 가는 모습이 어찌나 부러웠던지요. 친구들의 밝은 표정과는 반대로 나는 점점 의기소침해지는 모습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내게는 상급학교 진학이란 꿈은 애당초 꿈도 꾸지 않아야 했습니다. 대신 서울로 무작정 상경을 하여 여러 직업을 전전긍긍하다가 장사를 해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고향에서 군 복무를 단기사병으로 제대하고 우체국 집배원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드디어 월급을 받았고,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공부를 하기 위해 주경야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맹자가 쓴 고자장구(告子章句) 하편을 떠올리며 '이토록 괴롭히고, 지치게 하고, 굶주리게 하고, 어지럽히게 하고, 인내하게 하는 것'은 분명 내게 큰 사명을 주려고 하는 것이니 후일을 기다려야 한다고 다잡았습니다. 서예는 열정의 또 다른 언어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며, 늦은 시간까지 책을 펼치고 문제를 풀었습니다. 내 앞에 놓인 고등학교 문턱은 이제 더는 불가능한 장애물이 아니었습니다. 졸업장을 손에 쥐고 대학교에 갈 계단을 오르게 된 기회가 내게 도래했다는 기쁨, 그 순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설렘이었습니다. 이로써 드디어 나도 대학교에 입학할 기회를 얻게 된 겁니다. 하지만 박봉에 내 뒷바라지만 하다가 늙어가는 아내에게는 차마 대학에 갈 거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몇 달을 망설였습니다. 밤에는 대학생, 낮에는 회사원의 이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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