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어려진 일곱 살 첫째도 ‘엄마가 열 살에 컴퓨터 사주기로 약속했는데 멀어졌다’며 슬퍼했다”
만 나이 통일법 시행을 하루 앞둔 27일 오전 한 시민이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계산대에 19세 미만 술·담배 구매 불가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두 남매를 키우는 양길정씨는 최근 둘째인 아들에게 ‘만 나이’ 개념을 가르치다 진땀을 뺐다.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되고 이듬해 첫날 한 살을 더 먹는 ‘한국식 나이’에 익숙한 아들은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여섯 살”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0세에서 시작해 생일이 지날 때마다 한 살씩 늘어나는 만 나이 기준으로는 4세다. ‘만 나이 통일법’ 시행 소식을 접한 그는 차근차근 만 나이 셈법을 알려주며 “이제 너는 네 살이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들은 “나는 여섯 살 ‘형님’인데 왜 다시 네 살이냐”고 버럭 화를 냈다. 양씨는 28일 고 말했다.이날부터 법적ㆍ사회적 나이를 만 나이로 일원화하는 만 나이 통일법이 전면 시행됐다. 이미 행정, 법률 등 공적 영역에서는 오래전부터 만 나이를 써온 터라 시행 첫날 큰 혼란은 없었다.
일상에선 달랐다. 대부분 국민이 한국식 나이에 익숙한 탓에 여기저기서 “불편하다”는 불평이 터져 나왔다. 학부모들은 어린 자녀에게 새로운 나이 셈법을 가르치느라 속을 태웠고, 바뀐 제도를 잘 모르는 술집ㆍ편의점 직원들은 “손님 생일까지 일일이 확인해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세계 유일의 ‘한국 전통 나이’ 문화가 낯설었던 외국인 유학생들 정도가 “긍정적 변화”라며 새 제도를 반겼다. 만 나이가 두려운 부류는 단연 학부모다. 이날 온라인 맘카페에는 “첫돌에 양초 1개, 두 돌에 2개 식으로 개념을 설명했다”, “미역국 먹을 때 한 살 먹는다” 등의 여러 팁이 공유됐다. 문제는 한국식 나이에 비해 한두 살이 줄어드는 만 나이를 아이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0년 2월생 자녀를 키우는 30대 김모씨는 “이제 3세라고 가르치니 바로 싫다고 짜증을 냈다”며 “아이들은 형, 언니를 동경하는 습성이 있어 어려지는 걸 꺼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2020년 2월생 딸을 둔 이모씨도 “2019년 12월생 이웃 아이에게 언니라고 불렀는데 만 나이로는 동갑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푸념했다.주류나 담배를 팔 때 나이를 확인해야 하는 편의점에서도 혼선이 빚어졌다. 청소년보호법상 담배 및 주류 구매 연령은 현재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 ‘연 나이’가 기준이다. 생일과 관계없이 2004년생부터는 술ㆍ담배를 살 수 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0 0 공유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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