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정부 이후로 대통령이 국회와 정당을 경시하는 풍조는 지금까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요즘 국민의힘이 초선·중진 가릴 거 없이 대통령에게 꼼짝 못 하는 데엔 이런 오랜 역사적 경험이 DNA에 새겨진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1948년 8월15일 중앙청 광장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언하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 출처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_______한국대통령제 100년 결정적 장면들_02 왜 ‘대통령’일까? 정치사에서 대통령제는 비교적 최근인 1787년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미국 건국과 함께 생겨난 새로운 정치제도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지금은 60여개국에서 순수하거나 약간 변형된 형태의 대통령제를 운용하고 있다. ‘대통령’이란 단어가 모호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제왕의 느낌을 물씬 풍겼던 것은 아니다. 240여년 전 영국과 전쟁을 치르고 독립한 미국은 영국 왕 조지3세의 전제 통치를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신대륙으로 건너온 이들은 유럽 왕정과는 완전히 다른, 시민이 지배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원했다. 이들은 로마의 공화정에 주목했다. 귀족 대표기관인 원로원을 본떠서 상원을 만들고, 로마 시민의 이익을 대변했던 민회를 본떠서 하원을 만드는 양원제를 채택했다.
워싱턴은 종신 집권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대통령직을 제어하기 위해 스스로 세 번째 임기 도전을 거부했다. 이승만은 대통령을 두 번까지만 연임할 수 있도록 한 헌법을 무리하게 개정했다. 국회에서 헌법 개정안이 한표 차로 부결됐는데도 이른바 ‘사사오입’을 적용해 가결됐다고 선포했다. 그의 장기집권 꿈은 유혈 사태를 부른 부정선거로까지 이어졌다. 한국 대통령제는 왕이 되려는 욕망 탓에 처음부터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승만은 또 대통령제의 핵심인 ‘견제와 균형’ 원칙을 망각했다. 정부 수립 직후부터 대통령과 국회는 날카로운 대립 속으로 빠져들었다. 1948년 8월15일 정부 수립을 앞두고 헌법기초위원회에서 채택한 정치형태 초안은 의원내각제였다. 국회에서 선출하는 대통령에겐 상징적 권한만 주고, 실질적인 행정부 운영은 국회 다수당 대표가 겸하는 국무총리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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