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석주 이상룡 선생을 찾아서 이상룡 이상룡평전 석주이상룡평전 김삼웅 기자
국가의 존립이 무너지는 절망의 시기, 사방이 어둠에 덮여 한 줄기 빛도 찾기 어려운 시국이었다. 긴 세월 호사를 누려온 양반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길 것이 두렵지만 나서길 꺼리고, 같은 세월 갖은 착취와 학대를 받아온 백성들은 이가나 왜가나"그놈이 그놈"이라는 체념으로 나서길 주저하였다.
백면서생에게 의병이나 해외망명은 여간해선 감행이 어려운 결단이었다. 더욱이 단신이 아닌 가족·친척이 함께하는 망명은 쉽지 않다. 누대에 걸쳐 전승된 명문가의 기득권을 내려놓았고, 떠나기 전 노비들을 해방시키며 노비문서를 불살랐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표이다. 그리고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가족들에게 을 읊었다. 대지에 그물 펼칠 것 이미 보았거니 결행을 주도한 석주 선생은 뜨거운 피 펄펄 튀는 젊은 연세가 아니었다. 이미 쉰 고개를 넘어선 53세, 당시만 해도 평균 수명이 40세 전후이던 시절에 가솔 50여 명을 이끌고 망명객이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74세가 되는 1932년 6월 선생은 길림성 서란현 소고전자에서"국토가 회복되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으로 싣고 가지 말라. 우선 이곳에 묻어두고 기다리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사욕이 없었고 감투를 탐하지 않았다. 오직 조국의 자주독립에 모든 것을 바친 장엄한 생애였다.그의 고택인 경북 안동의 임청각은 일제가 기차 철도를 깔아 그 가문의 독립정신을 훼손시켰다. 문재인 정부에서 2025년까지 99칸 임청각의 원형을 살리고 임청각 출신들의 독립운동 행적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을 시작했다. 공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임청각은 주인 석주 이상룡 선생을 포함 11명이 독립운동의 서훈을 받았고, 석주 선생의 처가와 사돈집까지 하면 서훈자가 40여 명에 이른다. 그야말로 독립운동의 성지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최근 뉴스, 대한민국 헤드 라인
Similar News:다른 뉴스 소스에서 수집한 이와 유사한 뉴스 기사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저서 '그분을 생각한다'[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73] 전봉준으로부터 문재인까지 27명이 소환되었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하얀 목소리' 시집 간행[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71] '미수에 이른 젊은 변호사'의 시혼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경향신문에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연재경향신문에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연재 한승헌 한승헌변호사평전 시대의양심_한승헌평전 김삼웅 기자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단애에 버티고 선 천년의 바위같은 모습단애에 버티고 선 천년의 바위같은 모습 한승헌 한승헌변호사평전 시대의양심_한승헌평전 김삼웅 기자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미수기념문집 '산민(山民)의 이름으로'[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68] 그는 80살을 넘기고도 왕성한 활동가였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자서전,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64] 2009년은 그에게 의미 깊은 해가 되었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