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생애를 취재하기 위해, 100여명의 주변 인물들을 만난 기자, PD들이 있다.19세에 한약사 시험을 통과해 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돈으로 평생을 지역의 인권, 문화, 역사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진주의 ‘큰어른’ 김장하 선생. 그는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절대 자신의 공적을 밝히지 않고, ‘자랑이 될 것 같은 말’에 대해서는 누가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등록금, 하숙비, 생활비 등 지금껏 셀 수도 없이 많은 장학금을 지원했지만, 어떠한 전달식도 열지 않아 장학생의 정확한
19세에 한약사 시험을 통과해 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돈으로 평생을 지역의 인권, 문화, 역사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진주의 ‘큰어른’ 김장하 선생. 그는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절대 자신의 공적을 밝히지 않고, ‘자랑이 될 것 같은 말’에 대해서는 누가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7년간 김장하 선생의 일대기를 취재해 온 김주완 기자는 100여명의 주변 사람들을 만났다. 김 기자에게 협업을 제안해 작년 11월부터 촬영을 시작한 김현지 PD은 30여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서울, 부산, 경남 등 전국 각지로 이동도 많이 했다. ‘김장하 장학생’이었던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는 일본까지 찾아갔다. 카메라를 들어야 하는 PD들의 취재는 더 어렵다. “다큐를 만들겠다고 마음 먹고 선생님을 찾아갔다. ‘인터뷰해달라고 조르지 않겠다, 몰래 찍지 않겠다, 영웅화하지 않겠다’ 이렇게 세 가지를 약속하면서, ‘다큐를 만들고싶습니다‘라고 했다. 선생님은 ’안된다, 된다‘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냥 ’그러면 다음에 뵙겠습니다. 다음에 카메라 들고 올게요’라고 하고 도망갔다. 그 다음부터 김주완 기자를 앞세워 뒤에 카메라를 대고 들어갔다.” 김현지 PD의 말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냥 막무가내로 치댔고, 선생님도 봐주셨던 것 같다. 나중에는 선생님이 ‘같이 밥먹으러갈까?’라고 하셨다.”
“전혀 다른 방식이었음에도 이번 취재과정이 제일 재밌고 즐거웠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분은 꼭 기록으로 남겨야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하고있는 작업을 격려해주시고, 적극적으로 협조해줬다. 그 과정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나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김주완 기자의 말이다. 김현지 PD가 붙인 다큐멘터리의 이름은 ‘어른 김장하’다. ‘어른한테도 어른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에서 지은 이름이다. “김주완 기자가 ‘닮고 싶은 사람이 어른’ 이라는 말을 했었다. 사람들이 꼰대는 싫어하지만, 어른을 기다리지 않는 건 아니다. 자기가 따라가고 싶은 어른을 계속 찾고 있다. 그 열망에 대답해줄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김장하 선생은 열아홉에 한약업사 자격을 얻어 1963년 고향인 경남 사천에서 한약방을 개업했고, 10년 뒤 진주로 이전해 50년간 운영했다. 김 선생은 한약방을 운영해 번 돈을 개인을 위해 쓰지 않았다.
“선생님 댁에 갔다가 책을 한번 보게됐다. 페이지별로 장학생 이름과 학생에게 언제 무슨 돈을 줬는지 기록한 가계부였다. 수재도 많았지만, 여상, 공업고등학교를 다니는 분들, ‘여상이라도 다니고 싶었던’ 분들도 많았다. 선생님은 직접 우체국으로 가서 우편환으로 하나하나 송금하셨다. 그때 여성들은 집에서 초,중학교도 안보내던 때인데, 학생들을 지원했을 때 선생님 마음이 어땠을까. 그 학생들이 대학에 가고 싶어도 못가고 공장에 가서 일해야했을 때 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했다.” 김현지 PD의 말이다. 해정씨는 이후에도 경기도 안양과 부산의 노동현장에 위장취업, 노동운동을 했고, 1993년 ’내일신문‘ 창간멤버로 합류해 기자로도 일했다. 40대 중후반 방송통신대를 거쳐 대학원에 입학했고. 50대 중반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부산대학교와 동아대학교에서 교양과목으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해정씨는 김 기자에게 ’나의 어떤 선택에 대해서도 믿고 지지하며 기다려준 김장하 선생이 살아오는데 가장 든든한 배경이었다‘고 전했다. 김장하 선생은 지난해 12월 평생 해오던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했다. 남은 기금 34억 가까이를 경상국립대에 기증했다. 1963년부터 60여 년 운영해온 남성당한약방도 지난 5월말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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