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부터 거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청계천의 노점상이었다. 20년 전 청계천을 복구하는 공사로 인해 쫓겨났다. 서울시의 ‘대책’에 따라 동대문 운동장에서 얼마간 장사를 ...
2~3년 전부터 거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청계천의 노점상 이었다. 20년 전 청계천을 복구하는 공사로 인해 쫓겨났다. 서울시의 ‘대책’에 따라 동대문 운동장에서 얼마간 장사를 하기도 했으나, 시장을 억지로 밀어넣은 운동장에는 드나드는 사람도, 이문도 시원치 않았다. 상인들이 풍물시장으로 다시 옮겨질 때 그는 서울을 떠나 5일장의 장돌뱅이가 됐다. 수년간 전국을 떠돌다 이제 서울역까지 밀려났다.
청계천에서 일어난 대규모 노점 철거와 달리 20년에 걸쳐 일어난 그의 내몰림은 아주 천천히,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일어났다. 그런 그의 시간 속에서 현재의 상황과 청계천 복구 사업을 대번에 연결짓기는 곤란해 보인다. 전국 5일장을 열심히 다녀도 몸 누일 집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마지막 시간이 어려웠고, 그전엔 늘 그전보다 더 어려워지기만 했던 것 같다고 떠올릴 뿐이다. 강제 철거라는 스펙터클은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이후에도 오랜 시간 그의 삶에 영향을 끼친 셈이다. 빈곤은 폭탄처럼 일상에 던져질 때도 있지만, 때론 그의 삶처럼 아주 천천히 일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렇듯 현대의 빈곤은 단순히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에 빈민 역시 단일한 외양을 갖지 않는다. 가난에 빠진 이들 사이의 공통점은 차라리 빈곤을 발생시키는 한국의 사회구조에서 찾는 것이 낫지만, 복지제도는 이와 반대의 경향을 띤다. 소득과 재산은 이 정도, 가족관계와 소비수준은 이 정도. 잔여적이고 낙인적으로 운영되는 복지제도의 심연에는 ‘도울 만한 빈민’을 정할 수 있다는 오해가 있다.
‘약자와의 동행’을 서울의 캐치프레이즈로 삼은 오세훈 시장의 관심 역시 여전히 ‘누구나 빈민으로 보는 빈민’을 지원하는 것에만 머무는 듯하다. 쪽방 지역에 에어컨을 설치하거나, 식권을 나누어주는 결정은 쉽게 하지만, 때이른 폭염에 거리로 내몰리는 주민을 지원하는 데는 무관심하다. 그러나 빈곤이라는 난제는 가난한 이들을 그저 돕는 것이 아니라 빈곤을 발생시키는 사회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질문할 때만 해결의 실마리가 열린다. 청계천 노점상에서 거리로 내몰린 그의 삶에서 빼앗긴 것은 함께 장사하던 이웃들, 채무 없는 삶, 건강 같은 한번 뺏기고 나면 회복하기 까다로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약자와의 동행이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길이라고 강변하지만, 얕은 복지를 뿌리는 것만으로 해소되는 불평등은 없다. 오는 27일, 옛 동대문 운동장이었던 DDP에서 ‘서울약자동행포럼’이 열린다고 한다. 부디 그곳에서 쫓겨난 사람들도 기억하는 포럼이길 빈다. 한쪽에서는 노점 철거로 홈리스를 양산하고, 1~2평 작은 쪽방에 30만원의 월세를 낼 때가 되어야 식권이라도 주는 일을 ‘동행’으로 포장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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