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현대차 러시아 공장

2010년 현대자동차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사실상 반(半)강제적으로 세워졌다. '오일머니'로 커진 러시아 자동차 수요에 대응한다는 명분도 있었지만 러시아 측으로부터 투자 압박이 집요했다. 당시 게르만 그레프 경제개발통상부 장관(현 스베르은행 회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앞으로 수차례 서한을 보내 러시아에 생산공장을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 현대..

2010년 현대자동차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세워졌다. '오일머니'로 커진 러시아 자동차 수요에 대응한다는 명분도 있었지만 러시아 측으로부터 투자 압박이 집요했다. 당시 게르만 그레프 경제개발통상부 장관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앞으로 수차례 서한을 보내 러시아에 생산공장을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 현대차로선 이를 무시할 경우 '괘씸죄'에 걸려 협박성 세무조사라도 받고 사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었다. 특히 현대차는 공장을 두기 전부터 러시아 판매 순위 1~2위를 다투면서 견제 대상이었다. 크렘린의 불만은 현대차가 물건만 판매하지, 공장 건설 같은 투자를 통해 고용 창출 등 경제에 기여하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현대차 공장은 러시아의 은근한 압박 속에서 2008년 6월 착공돼 약 2년 뒤인 2010년 9월 완공됐다. 연산 15만대로 시작한 공장은 소형 세단 솔라리스, 기아 리오 등을 러시아 국민차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준공식에 참석했던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현대차의 다른 나라 공장보다 러시아 공장이 더 나은 결과를 갖게 될 것"이라고 호기 있게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 말은 2022년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허언이 됐다. 전쟁 제재로 부품 조달이 안 돼 공장 가동이 멈췄다. 현대차·기아의 러시아 시장 점유율은 전쟁 직전인 2021년 24%에서 올해 8월에는 고작 6대 판매에 그쳤다.

최근 러시아 정부는 자국 기업을 통한 현대차 공장 인수 방침을 밝혔다. 앞서 러시아 공장을 매각했던 도요타와 닛산의 길을 밟는 것이다. 현대차의 공장 철수는 러시아가 장기 투자할 곳이 못 된다는 인식을 키울 것이다. 이는 러시아가 종전 후 첨단 기술과 투자를 유치할 기회를 잃게 만들 수 있다. 러시아 경제분석가 크리스 위퍼의 경고는 곱씹을 만하다."미래 서구인들이 무인자동차를 타고 다닐 때 러시아인은 국민차 '라다'를 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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