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지금 당장 어디에서 놀아야 하나. 식당·카페에서 시작된 ‘노키즈존(No Kids Zone)’은 사회로 확산되고 있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놀이터는 드물다. 어린이를 환대하지 않는 현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지난달 23일 경기 성남시의 한 도서관에서 만난 9세 예은이는 한껏 들떠 있었다. 나무 막대로 직접 만든 장난감을 자랑하며 실내를 누비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예은이의 작품은 도서관 내에 자리한 어린이 작업실 ‘모야’에서 탄생했다. 단추, 털실, 병뚜껑, 글루건, 드라이버 등 100여종의 재료와 공구를 갖춘 곳이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라’고 지시하는 어른도 없다. 143㎡의 널따란 라운지에서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보드게임을 하거나, 비밀 이야기를 소근댔다. 채율이처럼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이곳은 지난해 8월 개관한 사립 공공도서관 ‘라이브러리 티티섬’이다.12~19세 어린이·청소년 중심의 도서관을 지향하며 설계 때부터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전체 공간의 절반가량이 12~19세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12세 미만도 전체의 15%나 된다. 티티섬의 정체성은 도서관이면서 동시에 놀이터다.
“학교 끝나면 물이나 간식을 사서 친구들이랑 앉아 있어요. 카페보다 싸고 눈치도 덜 보여요. 시원하고요.” 윤아는 친구들이랑 수다 떨 때가 제일 즐겁다. 문제는 그럴 공간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집 근처엔 놀이터가 없고, 학교 앞에 잠시 쉬다 갈 분식집이나 문구점도 없다. 근처 여자중학교도 같은 사정이다. 편의점 점원은 “여기 손님은 거의 다 근처 초등학생, 중학생”이라면서 “학원 가기 전에 여기 앉아서 뭘 먹는다”고 했다. 부산 동구 A동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 현서에게 동네 소개를 부탁했다. “일단 가파르고, 그다음엔 놀이터가 별로 없어요.” 아찔한 경사 위로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A동은 아파트가 드물어 놀이터도 귀하다.한 동네에 사는 윤아가 역 근처 노래방으로 시선을 돌리는 사이, 현서는 체육공원을 향해 가파른 오르막길을 걷는다. 도보로 20분 걸리는 체육공원은 현서가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는 동네 유일의 공간이다.
지난 9월 초 서울 E구 한 아파트 단지의 한 놀이터는 보기 드물게 온통 어린이들로 붐볐다. 초등학교 1학년 시후는 아파트 이웃이자 같은 반 친구인 영욱이와 함께 나타났다. 시후는 “여기에서만 축구를 할 수 있어서 자주 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놀이터를 연구해온 도시계획학자 최이명 박사는 잘못된 인식이라고 본다. 그는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시간이 안 맞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흩어진 아이들의 시간을 모으는 것이 놀이터의 역할이라는 뜻이다. 공간이 어떻게 시간을 모은다는 말일까. 채아의 어머니 강주은씨는 “아이들의 방과후 일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단체카톡방에서 약속 시간을 정해 놀이터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채아의 학교 앞 놀이터를 함께 찾은 지난달 19일, 채아는 놀기로 약속한 친구 2명, 방과후 활동이 끝난 뒤 즉흥적으로 합류한 친구 1명과 함께 나타났다. 아이들이 그물과 암벽을 타며 신나게 노는 사이 채아의 다른 친구들도 종종 놀이터를 찾아왔다. 채아가 신나서 소리쳤다. “야, 우리 인터뷰하는데 같이할래?” 앞서 서울 D구에서 만난 우진·서진이와 찾은 4곳의 놀이터 중 3곳이 텅 빈 공간이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한국의 카페·식당에는 ‘노키즈존’이란 팻말이 붙은 곳이 적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노키즈존을 “나이를 이유로 한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행위”라고 판단했지만, 노키즈존은 상업시설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노키즈존’에 해당되는 용어가 없고, 극히 드물게 논란이 되는 해외와 달리 한국에서 노키즈존은 일종의 규범이 되어가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는 남궁수진씨는 “비장애인 눈엔 장애인이 안 보이듯, 성인 눈에 어린이가 안 보이니 어린이에 대한 몰이해만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키즈존은 아이들 앞에 놓인 또 다른 장벽이다.“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는 남을 차별하는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린이들은 노키즈존이 ‘차별’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차별은 고정관념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인데, 어린이는 당연히 시끄럽다는 생각으로 모두 못 들어오게 하니까요.” 반면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17.4%에 그쳤다. 해인이는 “실제로 식당에서 사고를 치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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