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수상자인 미국 경제학자는 '한국이 민주화를 통해 경제를 훌륭하게 발전시켰다'고 했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모두가 앞만 보고 질주할 때 홀로 뒤돌아 앉아 함께 눈물 흘리는 사람이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중략)/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정호승 시 ‘슬픔이 기쁨에게’).
대학 신입생이던 1977년 봄 세상을 조금 더 알려고 법정에 갔다. 푸른 수의를 입은 소년이 공포에 떨고 있었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 무심한 국선변호인은 “배고파서 그랬습니다”라고 한 뒤 입을 닫았다. 장발장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한 국가의 원죄를 판사도, 검사도 외면했다. 김광규 시인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의 “혁명이 두려운” 소시민 군상처럼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고통받는 약자를 정죄하는 부조리한 세상에 필요한 건 혁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을 힘들게 읽으면서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가 쉬플로프스키의 ‘낯설게 하기’를 떠올렸다. 습관화는 모든 것을 ‘무감각의 무덤’으로 삼켜버리고, 느낄 수 없게 하고, 마침내 어떤 사물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사물을 낯설게 해야 비로소 본질이 보인다고 했다. 한강은 늘 낯선 곳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모호하다. 전위적이고 불편하다. 잃어버린 삶에 대한 감각, 인간 존엄성을 회복시키려는 의도다. 이 병적인 시대가 그토록 숭배하는 오만한 화폐도, 요사한 정치도 감당할 수 없는 난제를 비무장한 문학이 필사적으로 끌어안고 있다.
그가 발화한 시적 언어는 나라 밖에서 먼저 공감받았다. 우리의 냉담이 부끄럽다. 이 나라 최고의 가치는 경쟁과 성공이다. 오직 1등, 승자만 기억한다. 관용·연대·평등의 완충지대는 어디에도 없다. 한국인은 집단으로는 늘 천국 언저리를 배회하지만 개인은 무간지옥을 헤맨다. 그래서 한강은 아포리아에 갇힌 21세기 한국에 강림한 축복이다. 불화하는 모순에 신음하는 우리를 대속하려는 듯 시선은 저 골고다 언덕에 고정돼 있다. 존재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회복하고, 위엄 있는 삶의 주체로서, 타인과 연결돼 살아갈 것을 명령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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