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팅이 다 벗겨진 간판, 녹슨 셔터, 덕지덕지 붙은 안내문,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뿌연 유리창, 가게 밖에 쌓여 있는 노랗게 색이 바랜 물건들, 수많은 사람이 밟아 무늬조차 ...
코팅이 다 벗겨진 간판, 녹슨 셔터, 덕지덕지 붙은 안내문,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뿌연 유리창, 가게 밖에 쌓여 있는 노랗게 색이 바랜 물건들, 수많은 사람이 밟아 무늬조차 없어져 버린 현관 발매트.
아무 생각 없이 불쑥 들어갈 수 있는 다이소나 대형마트와는 다르다. 거기에는 자아가 있는 ‘가게 주인’이 없다. 물론 소유주는 있겠지만, 계산대 앞에 선풍기를 틀고 앉아 트로트 프로그램을 보고 있지는 않다. 마트에서는 누구나, 얼마든지, 무엇이든 봐도 된다. 30분 동안 구경만 해도 좋고, 물건을 들어 올렸다 놨다 해도 나무랄 사람이 없다. 이해도 간다. 아무리 손님이라도 주인 입장에서는 자기 공간을 침범한 낯선 사람이다.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 오래되고 낡은 자기 가게를 부끄러워하는 주인들도 많다. 아무래도 물건 장사는 깔끔하게 하기 쉽지 않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손님들은 계속 새로운 물건을 찾는다. 그러다 보면 재고가 쌓인다. 지난번에 온 물건을 다 팔지도 못했는데 또 새 물건을 들여야 한다. 그렇게 쌓인 물건이 시대의 지층을 이루고 점차 먼지가 쌓인다. 언제 한번 날 잡고 싸악 정리하고 싶지만, 매일 가게를 열다 보면 생각처럼 안 된다. 그런 상태에서 낯선 사람이 구경을 한다고 눈을 반짝이고 있으면 나라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오케이. 각본은 완성됐다. 이제 대흥문구라는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오래된 문구점에 들어갈 때면 좀 ‘오버’를 보태서 인천공항에서 여권을 들고 출국 수속을 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느낀다. 그렇다. 나에게 이건 작은 여행이다. 유리문 하나만 넘으면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만들어 놓은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짐작은 했지만 상상 이상이다. 가게가 한눈에 다 파악이 안 될 정도로 넓다. 그 공간에 물건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천장까지 빼곡히 올라간 책장이 공간의 구획을 나눈다. 통로 중간에도 양쪽으로 박스들이 빽빽하게 놓여 있어 복도가 좁다. 바닥에 놓인 박스들은 오픈되어 있고 그 안에 캐릭터 파우치며 필통 같은 것이 가득 들었다. 진열장 옆쪽에도 못을 박아 스티커며, 카드를 주렁주렁 몇겹이나 걸쳐놨다. 조명은 그리 밝지 않고 형광등 한 개는 깜빡이고 있다.
아직까지 사람들이 가치를 두지 않아서 가격은 싸지만 나는 그것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것들 말이다. 이럴 때는 마치 유적을 발굴하는 듯 신성한 마음이 된다. 그래, 난 단순한 호기심 변태가 아니라 일종의 고고학자다! 고고학자의 마음으로 한 칸 한 칸 탐색한다. 즐겁다. 봐도 봐도 끝이 없다. 올려도 올려도 새 영상이 나오는 유튜브 쇼츠를 보는 느낌이다. 연필 코너에서는 아무리 봐도 80년대 전에 만들어진 연필까지 발견했다. 요즘같이 연필에 인쇄된 게 아니라, 스텐실 기법으로 그림을 찍었다. 와, 이건 진짜 내가 보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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