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씨년스럽다’는 ‘2025년 을사년’을 맞아 더욱 인구에 회자되는 표현이다. 은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몹시 스산하고 쓸...
이 말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을사년’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처럼 떠돌고 있다.1905년 11월18일 새벽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대한제국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일본 경찰은 “고종이 몇시간째 통곡했고, 급기야 피를 토하기까지 했으며, 전국 각지에 사자를 파견, ‘조약은 불법으로 맺어졌으니 짐의 백성들은 궐기하라’는 밀명을 내렸다”는 정보보고를 올렸다.| 제24권 ‘한일협약’로그인 아직 회원이 아니신가요? 경향신문 콘텐츠입니다. 기사를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을 해주세요. 회원가입 로그인 하지만 1855년 편찬된 조재삼의 에 다른 설명이 등장한다.“…‘을사=기근의 해’를 가리키는데, 지금은 가난과 고통 등을 표현하는 것으로 쓰인다.”그러던 차에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한 절망적인 ‘늑약’까지 ‘1905년 을사년’에 맺었으니 어찌되었겠는가.
“한국 황제는…이번 제안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까닭, 그리고 이 제안에 동의하는 것이 오히려 한국의 장래에 맞는다는 것을 깨달은 듯 본사에게 ‘당국자에게 명하여 일본 정부의 제안에 기초하여 타협을 이루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무튼 밤 8시 열린 회의는 이토가 대신들을 한 명 씩 지목하며 ‘찬반’를 묻고 ‘찬반’ 여부를 자의로 해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폭’이나 다름없었다. 먼저 이토가 한규설의 의견을 물었다. 한규설은 “한결같이 반대한다”고 딱 잘랐다.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들 작정으로 11월9일 방한한 일본 특사 이토 히로부미는 안하무인격으로 고종을 압박했다. 이토는 “누구 덕에 한국이 생존하는 거냐”면서 “빨리 조약 체결에 나서라”고 겁박했다.| 24권 중
하지만 대한매일신보의 취재 결과는 달랐다. 신문은 “조약의 조인이 어렵다고 여긴 일본측이 일본공사관 통역인 마에마 교사쿠과 공사관 서기관인 누마노 등을 외부 사무실에 보내 외부대신 인장을 탈취했다”고 전했다.대한매일신보의 기사가 매우 구체적이다. 그러니 이 기사에 신뢰감을 보낼 수밖에 없다.■흠결 투성이 조약문을사늑약의 골자는 ‘외교권을 일본에 넘기고, 그것을 관장하는 통감을 두는 것’ 등이었다. 조약문에는 고종의 어새도 찍히지 않았고, 조인문서에 조약의 명칭도 없다. 국가간 조약 체결은 위임·조인·비준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그 어떤 것도 갖춰지지 않았다. 즉 을사늑약은 강박에 의해 맺어진 ‘무효 조약’일 뿐 아니라 아예 조약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고종의 교묘한 시간끌기와 한규설 참정대신 등의 끈질긴 반대 덕분이라는 견해가 주목을 끈다. 이를 근거로 고종은 “을사조약은 한국 황제가 동의하지도, 서명하지도 않은 늑약”이라고 호소하는 밀서와 친서를 잇달아 보냈다.외부대신 박제순은 “조약체결에 동의할 수 없지만 황명이면 별 수 없다”고 했다. 이토는 “협상으로 잘 처리하라는게 폐하의 명령이니 외부대신의 의견은 찬성으로 봐도 좋겠다”고 해 해석했다.| 24권 중참정 한규설은 이완용 등의 배신으로 을사늑약이 선포될 위기에 빠지자 되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탁지부대신 민영기와 법부대신 이하영은 반대표를 던졌다.
신문은 17일 밤 회의에서 “참정 한규설과 법부·탁지부 등 두 대신은 ‘부’자를 쓰고 다른 사람은 모두 ‘가’자를 썼다”고 전했다. 이하영의 경우 이 황성신문의 최초 보도 때문에 ‘을사5적’이라는 역사의 손가락질은 받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범석의 ‘경난록’은 “…법부대신 이하영이 조약에 날인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일본을 돕고는 겉으로 한국을 위하는 척했다”고 비판했다.‘찬성 6, 반대 2’라는 강변 속에 조약의 통과를 선언한 이토와 7인의 대신은 조약문의 자구수정에 들어갔다. 그 결과 결국 허울 뿐인 추가사항이 포함되었다. 을사늑약의 골자는 ‘외교권을 일본에 넘기고, 그것을 관장하는 통감을 두는 것’ 등이었다.아닌게 아니라 이하영은 이완용의 제안에 따라 조약문의 자구를 수정하는 자리에서 적극 가담했다.그러나 그 역시 즉시 조약의 자구 수정에 참여했고, 한일합병 후 귀족이 되었으며 역사 중추원 고문으로 출세했다.
통곡한 총리 폭발한 민심…‘을씨년스러웠던’ 1905년 을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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