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도 그런 일을 당했다는데 나도 이제 말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5·18 당시 계엄군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한 많은 피해자들은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
5·18 당시 계엄군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한 많은 피해자들은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첫 번째로 용기를 낸 이는 김선옥씨였다. 그해 김씨는 1980년 5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대에 붙잡혀 고문을 받았고 석방 전 수사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공개 증언했다. 서 검사의 ‘미투’에 이어, 김씨의 증언, 그리고 용기는 이어졌다. 정부 조사단과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피해 신고를 하고 조사에 응한 이들은 19명으로 늘었다.김선옥씨의 공개 증언이 처음은 아니었다. 전옥주씨는 1988년 민주화합추진위원회와 1989년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연행 이후 모진 성고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전씨는 5·18 당시 광주에 우연히 방문했다 참상을 본 뒤 가두방송에 참여했고 시민들이 힘을 합칠 수 있게 구심점 역할을 한 여성이다.
이 회장은 피해자를 찾아가 피해 사실에 대해 듣고 청문회 증언 자료를 준비했지만 야당 국회의원 등 관련자들은 오히려 만류하고 나섰다. ‘쟁점 사안이 아니니 진상규명을 위해 시급한 것부터 하자, 아무리 흉악한 놈들이라도 그렇게까지 했겠느냐, 너무 끔찍해서 믿어줄 것 같지 않다’는 등의 이유였다. 끝내 이 회장은 증언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이 피해자는 ‘5·18 특별법’이 제정된 뒤 1996년 1월 검찰조사에서 성폭력 피해 진술을 했다. 그는 가해자를 꼭 처벌해달라고 했지만 본격적인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는 현재 알츠하이머 투병 중으로 추가 진술이 어려운 상태다.그로부터 22년 뒤 김선옥씨가 ‘미투’를 하면서 끊길뻔한 피해자의 목소리는 다시 메아리가 돼 돌아왔다. 80년대 후반 전옥주씨가 공개 증언을 할 당시만 해도 5·18의 역사적 재평가조차 이뤄지지 못한 시점이었다. 공공연히 광주 시민을 ‘폭도’ ‘빨갱이’라 부르던 때였다.
5·18 관련자들의 명예회복이 광범위하게 이뤄진 2000년대에 들어서도 성폭력 피해는 여전히 수면 아래 잠겨 있었다. 성폭력 진상규명은 1980년 이후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난해에야 이뤄질 수 있었다. 김선옥씨는 조사위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가 5·18에 대해 남은 빚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것까지 하고 죽으면 되겠다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었던 것입니다.” 윤경회 조사위 조사4과 3팀장은 “5·18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말하기까지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40여년 만의 ‘듣기’ 이후 조사위는 드디어 16명의 피해자에게 “당신의 피해가 사실”이라는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다.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한 이남순씨와 정현순씨를 지난 1일, 7일 인터뷰했다. 이씨는 먼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제 말을 해도 되겠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정씨는 “아직 아무렇지 않다며 의식까지 해방되진 않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나가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생각한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국가가 진상규명 결정을 내리는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고 했지만 그 결정을 듣고 나자 “편해졌다”고 했다.
5·18 성폭력 피해자들은 앞으로 ‘열매’라는 이름의 자조모임을 통해 활동할 계획이다. 윤 팀장은 “44년이라는 시간 안에 피해자들의 중요 발언, 참여가 하나의 흐름이었다가 바닷물처럼 여기까지 모여든 것”이라며 “진상규명 이후의 남은 숙제들을 할 때”라고 말했다.이남순씨는 3시간가량 이어진 인터뷰 내내 줄담배를 피웠다. 손바닥만 한 작은 빨간색 파우치에서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연기를 내뿜고, 물이 든... 정현순 “늘 심연 속에 살았다” 삶의 뿌리를 짓눌러온 그날의 수치…“‘성폭력=낙인’ 잘못된 관념을 바꿔야”https://www.khan.co.kr/national/gender/article/202405130600131
1996년 비구니 피해자도 말했다…협박·외면 딛고 44년 만에 ‘사실’이 된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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