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주 52시간 상한제를 무력화하는 큰 구멍이 뚫렸다. 반도체 연구·개발직 특별연장근로를 한 번에 최대 6개월까지 허용해주는 행정지침이...
또다시 주 52시간 상한제를 무력화하는 큰 구멍이 뚫렸다. 반도체 연구·개발직 특별연장근로를 한 번에 최대 6개월까지 허용해주는 행정지침이 지난 14일부터 시행됐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입법의 경우 오래 걸리지만, 행정조치는 한 달도 안 걸릴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기자들에게 전한 것이 지난 11일이다. 바로 다음날 정부는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반도체 연구·개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보완방안’을 마련했고, 이어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를 확정·발표했다.
놀랍도록 빠르게 처리된 노동시간 규제 완화를 위한 ‘릴레이 경주’는 애초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쏘아 올린 ‘반도체특별법’에서 출발한다. 반도체특별법안의 주 52시간 적용 예외를 두고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정부와 국민의힘이 입법 대신 시행령을 선택했다. 윤석열 없는 윤석열 정부에서 윤석열식 ‘시행령 정치’가 여당과 야당, 정부 사이의 기가 막힌 삼각패스로 부활했다. 이뿐일까? 최상목 대행의 발 빠른 ‘말’에 이어 대통령실의 ‘말’이 이어졌다. 지난 13일 대통령실은 ‘특별연장근로는 응급조치이며,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포함된 반도체특별법이 통과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탄핵심판 동안 대통령실 집무실의 출입은 금지되며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통치 행위는 중지된다. 그럼에도 대통령 없는 대통령실의 ‘말’은 언론을 통해 확성기처럼 울린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수의 나팔소리도 이보다는 당당하지 않을 것이다.
특별연장근로제도는 문재인 정부가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면서, 그 예외를 허용하는 양보안이었다. 정치에 있어 양보도 좋고, 타협도 좋고 절충도 괜찮다. 그러나 이것이 본래 행하려던 취지를 무너뜨리는 수준에 이르면 ‘기만’이 된다. 세계적으로 ‘노동시간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시간 법을 누더기로 만들어 온 역사이기도 하다. 탄핵국면에서 여야가 합창하는 성장주의는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내재된 반노동주의에 뿌리내려져 있다. 애초에 주 40시간 시대에 52시간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이 난센스다. 우리는 대체 어떤 노동시간제 아래서 일하고 있나?
주 40시간법이 무력함에도 이번 특별연장근로 규제 완화는 특별히, 반대한다. 누더기법도 법이다. 주 40시간, 주 52시간 상한제는 탄핵국면에서, 다른 것에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권한대행이 신속하게 결정할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다. 2016년과 달리 2025년 광장에서는 노동자들이 노조 조끼를 벗고 참여하지 않아도 됐다. 민주노총이 환대받는 촛불집회는 2002년 미선·효순 추모 촛불집회 이후 처음이다. 노동자와 농민, 퀴어와 소수자들,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서로의 말을 듣고 각성이 되는 광장의 밤이 끝나지 않았다. ‘일부 고소득 연구·개발직’의 능력주의를 부추기고 이를 빌미로 노동하는 삶을 갈라치는 그 모든 언어에 반대한다. 탄핵 이후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기도 전에 어제와 다름없는 장시간 불규칙 노동을 예고하는 그 모든 정치에 반대한다. 그래서 이제는 특별할 것도 없는, 예외가 아니라 상례가 되어버린 특별연장근로의 추가적인 규제 완화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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