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에게 여름이란 늘 길고 긴 고된 시간이지만 그해에는 특별히 그랬다. 새로운 모습의 군인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분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새 세상’이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큰 소란과 함께 닥쳐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선데이 칼럼,추석,기억,여름,전쟁,인민군,여성동맹,세금,미군,OPINIO
그해 여름은 특별히 길었다. 농민들에게 여름이란 늘 길고 긴 고된 시간이지만 그해에는 특별히 그랬다. 멀리서 간혹 들리는 전쟁의 소식은 마을에 늦게 전해졌다. 대개는 간간이 찾아오는 뜬 소문들 정도였고 멀리서 들리다 점차로 가까이 다가오는 포성이 전부였다.
물론 변화도 있었다. 인민군이 들어온 지 사흘 만에 ‘정치 공작대’라는 사람 서너 명이 마을에 와서 인민위원회, 치안대, 여성동맹 등을 조직했다. 학교를 열어 우리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이 전쟁에 관해 시사강연을 해 주었다. 모두 재미있어했다. 인민재판도 처형도 있었지만 별 큰 사건은 아니었다. 몇 안 되는 ‘반동분자’들은 진작 경찰들과 함께 달아나고 없었다. 기껏해야 월남해서 어찌어찌 인연을 찾아 이 마을까지 흘러와서는, 배운 재주의 전부인 소주 내리는 기술로 술도가를 하던 사람을 인민재판에 회부해 밤중에 처형한 정도였다. ‘새 세상’의 엄청난 변화는 엉뚱한 곳, 하늘에서 왔다. 비행기들이었다. 멀리 높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비행기들이 시도 때도 없이 가깝게 찾아와서 엄청 빠른 속도로 엄청나게 무서운 불을 퍼붓고는 나 모른다는 식으로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은 거의 일상처럼 되풀이됐다. 인민군이 마을에 들어오면 어떻게 귀신처럼 알아냈는지 둘씩 혹은 넷씩 짝을 이루어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어 놓고 사라지곤 하였다. 인민군들은 주로 면 소재지 학교나 지서, 면사무소 같은 큰 건물이 있는 곳에 머물렀기 때문에 민가가 직접 폭격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때로는 오폭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은 논에 갈 때 지게를 지지 말라는 말들을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총을 메고 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도 농사는 지어야 했다. 모두가 한 해 농사로 한 해를 사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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