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저 강물엔 좌우도 선악도 없으며, 분단과 통일마저 없다newsvop
사르트르는 ‘말’이라는 자서전을 썼다. 자서전이라지만 지름길을 훤히 알면서도 일부러 구불구불한 길을 가리키는 심술쟁이 지식인의 면모를 거기서도 여실히 드러낸다. 한때 나는 대가들의 그런 능청스러운 말투와 전지적인 시선에 압도됐으나 어느 때부턴가 그들 또한 자신을 고백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존재임을 알고 안도할 수 있었다.
책 제목이 ‘알을 깨고 나온 새는 철책 위로 넘어가고’이고, 부제는 ‘평화책방 통일회귀선에서’이다. 책 표지를 보며 저자의 현주소를 알리는 표지판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그는 현재 철책선이 가까운 강화도 송해면 숭뢰리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철책선을 바라보며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나는 이제 60년을 지구에서 살다 운 좋게 인간으로 다시 한 번 태어난 것이라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환생했다고 여기니 좋은 점이 많았다. 과거는 한 번 정리가 됐으니 연연하거나 후회할 필요가 없었다. 현재는 새롭게 출발할 수가 있으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미래는 무슨 일이 닥쳐와도 과거보다는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으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이렇게 61세에 환생했다. 책방으로 흘러들어온 헌책을 정리하던 어느 날, 문득 손때 묻은 책들도 환생 혹은 부활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서전 비슷한, 아니 어쩌면 사르트르의 말처럼, 자서전 그 자체인 이 책을 끝까지 읽은 건 저자 최진섭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책 말고도 그와의 인연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토막토막 그를 알 수도 있었다. 그의 프로필 사진에는 가슴에 번호표를 단 네 명의 마라토너가 등장한다. 최진섭을 만나본 사람이 아니라면 네 명 가운데 누가 최진섭인지 식별하기 불가능한 사진이다. 김소월 시집 ‘님의 노래’는 50년 가까이 보관하고 있으며, 둘째 딸이 읽어 대를 이은 책이라고 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토마스 하디의 ‘테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등 세계문학전집에 수록됐을 명작은 다 섭렵한 것 같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루소의 ‘참회록’,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은 내용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한 채 청소년기에 읽은 책이라고 했다.
거의 매일 밤 전두환을 암살하는 계획을 짜고 이불 속에서 실행에 옮겼다. 스스로 피해망상증 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자신이 지닌 콤플렉스, 이를테면 성격, 외모, 사회 부적응, 열등감을 외부에 전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한창 이런 불면과 고민에 시달릴 때 한완상 교수의 ‘개방적 사고의 구조와 특성’과 ‘민중의 흑백논리와 지배자의 흑백논리’를 읽고는 씻은 듯 나았다.그는 어디서건 줄기차게 책을 읽었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들어가서는 더 많은 책을 읽었다. 1993년에 나온 신영복의 ‘엽서’를 수감자 입장에서 감명 깊게 읽었는데, 그 또한 신영복과 마찬가지로 감옥 밖으로 내보내는 법무부 엽서를 글쓰기 노트로 활용했다. 동시에 엽서는 그에게 언도된 3년 형량에 준하는 독서 기록물이기도 했다.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세상에 알려진 ‘보도지침 폭로’ 외에는 ‘말’지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말지가 2009년 폐간됐다는 사실도 몇 년 전에야 알았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로든 진보를 표방한 언론의 소멸이 불온한 현상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한국이란 나라에서 다양성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최진섭이 운영했던 출판사 ‘말’은 그러한 지형의 한구석에서 고독한 단독자처럼 거미줄을 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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