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총체적 파국 부른 외교안보 기조, 전면 수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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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총체적 파국 부른 외교안보 기조, 전면 수술해야newsvop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방향을 잃고 총체적 파국을 맞았다. 의전상의 실책이나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언행상 실수가 아니라 외교안보 기조가 총체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국제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미국의 정보 기밀문건 유출에 우리 정부의 태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성도, 합리성도 없다. 최초 사태가 보도된 직후 대통령실은 “미국과 협의”하겠다거나 “전례를 살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외국 정보기관이 대통령실을 도청해 정보를 탈취했다면 심각한 주권침해이자 적대적 행위이다. 또한 도청 범위와 내용이 무엇인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사태를 엄중히 인식하고 진상 규명과 함께 사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것이 외교적 규범이자 주권국가로서 최소한의 대응이다. 도청피해국이 도청가해국 눈치를 보는 출발부터 틀려먹었다.

도청이 없었다고 단정하거나 유출 문건 대부분이 조작됐다는 주장 역시 미국조차 하지 않고 있는 내용이다. 오히려 미국은 조사중이라면서도 사실상 유출된 문건이 ‘원본’임을 공식, 비공식으로 인정했다. 미국의 조사는 주로 유출 당사자와 경위, 추가 유출 내용이 있는지를 찾는 것에 집중돼 있다. 대통령실은 근거도 없이 도청을 괴담으로 치부하고, ‘한미 동맹을 흔들려 한다’며 야당과 국민을 겁박했다. 이번 문건 유출 사태로 첩보 대상이 된 각국 정부 중 유일한 대응에 외국 언론도 이례적이라며 보도를 낼 지경이다. 해마다 일본의 외교안보 기본방침을 밝히는 외교청서도 우리의 외교실패를 보여준다. 정부는 일본 대신 강제동원 피해자를 보상하기로 하면서 ‘물잔 절반론’을 운운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방일부터 지금까지 일방적 양보만 있을 뿐 일본의 호응은 없었다. 오히려 일본 교과서는 독도 영주권 서술을 강화했다. 이번 외교청서에서도 독도영주권은 물론 강제동원 해법에 대해 “한국 정부가 발표한 조치는 2018년 대법원 판결에 의해 매우 엄중한 상태에 있던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적시했다. 강제동원에 대한 책임 인정은커녕 ‘역대 내각 인식을 계승한다’는 립서비스도 누락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해 독도 문제만 항의하고, 강제동원은 하염없이 ‘물잔 절반’이 차기를 기다리는 꼴이다.

윤석열 정부는 북핵에 맞서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고 나아가 한미일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술에 사로잡혀 있다. 이를 위해 미일 양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은 금기라는 강력한 시그널이 대통령실과 외교안보 부처에 주입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안보실장과 외교비서관이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문제를 논의하다 도청당한 내용도 이를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미국의 도청과 일본의 외교청서에 알아서 굴욕적 자세로 임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미일 양국에 우리 목숨줄이 달려 있다는 외교안보 기조를 전면 수술하지 않고서는 차후에도 외교는 해보기도 전에 판판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윤 대통령부터 그릇된 외교적 주술에서 깨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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