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사진은 푸른 잎을 달고 있는, 그리고 2022년 사진은 노랗게 물든 잎을 달고 있는 은행나무의 모습을 담고 있다. 1971년 사진의 나무 아래 서 있는 사람들과 2...
1971년 사진은 푸른 잎을 달고 있는, 그리고 2022년 사진은 노랗게 물든 잎을 달고 있는 은행나무의 모습을 담고 있다. 1971년 사진의 나무 아래 서 있는 사람들과 2022년 사진의 나무 아래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건물로, 이 나무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이 은행나무는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에 있는 신라시대 고찰인 용문사 앞을 지키고 서 있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이 은행나무는 최근에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첨단 기술을 이용하여 검사한 결과, 키는 38.8m, 둘레는 11.0m, 무게는 97.9t으로 측정되었고, 나이는 1018살로 추정되었다. 아파트 17층 정도의 높이이며, 중형승용차 69대에 맞먹는 무게다. 한국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의 실체가 밝혀진 것이다.
이 나무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전설이 있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에 은거하러 들어가다가 심었다는 설과, 신라시대 승려인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것이 자랐다는 설이다. 지금부터 1018년 전이면 고려 목종 때이므로, 이 두 가지 전설 모두 시기적으로 안 맞는다. 과학이 전설을 뒤집은 것이다. 그렇지만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나무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는 전설은 아직도 사실 여부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가을이 되면, 사진과 같이 멋진 광경이 펼쳐지기 때문에, 용문사 절 구경보다 이 은행나무를 보러 오는 관광객이 더 많다.
은행나무는 많은 동식물이 멸종한 빙하기를 거치고도 살아남아 ‘살아 있는 화석’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가로수로 많이 심어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지만, 실은 멸종위기종이라고 한다. 사실 오래된 은행나무는 절보다는 향교와 서원 등 유교와 관련된 기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유교의 성인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 즉 행단에서 학문을 닦았기 때문이다. 한국 유교의 최고 교육기관인 서울 성균관의 명륜당 앞뜰에도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다. 성균관대학교와 일본 도쿄대학의 상징이 은행나무인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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