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성병관리소까지 가는 길은 몇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전과는 달리 건물에 출입이 불가능하...
동두천 성병관리소까지 가는 길은 몇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전과는 달리 건물에 출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철조망에는 철거를 반대하는 표지판과 현수막, ‘사유지출입금지’라는 푯말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2023년 소요산 관광 사업을 위해 성병관리소 건물을 해체하겠다는 동두천시의 발표 이후 달라진 풍경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없어 철조망 주변을 빙빙 돌면서 최대한 건물을 담아보려고 애썼다. 필름 현상 후 스캔을 한 사진 속 동두천 성병관리소, ‘옛 낙검자 수용소’는 예전에 바다였던 장소가 증발해 드러난, 오래전에 가라앉은 배처럼 보였다.
미셸 푸코의 문장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 둔다”는 ‘근대문명사회’라는 장치 내에서 국가권력이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방식을 비판한다. 생산성을 발휘하는 인구를 육성하고 전체의 성장을 위해 특정 집단의 희생이나 죽음이 자연스럽게 방치되는 선별 사회. 경제 성장 시기 한국이 그랬다. 한국 정부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1990년대 초까지 기지촌을 조성하여 미군을 위한 성매매를 승인·조장했다. 군사동맹도 유지하고 외화를 벌기 위해 국민을 이용한 셈이다. 외화벌이에 동원된 기지촌 여성들은 ‘전염병 예방법’과 ‘식품위생법’에 의해 관리되었다. 병에 노출되면 여성들만 성병관리소에 강제 수감되었다. 개인 처방이 있을 리 없었다. 일괄적으로 다량의 페니실린을 투여받았고, 이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개인의 죽음은 묵인되고 후유증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졌다.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전국에 유일하게 남은, 그 당시 역사 현장을 보여주는 자료다. 국가가 개인의 인권을 어떻게 유린했는지 보여주고, 국가 권력에 의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망가지는 역사를 품은 장소다. 장소가 사라지면 추모와 역사도 사라진다. 역사를 없애지 않으면서 경제적 논리도 충족하는 방안이 과연 없는 것일까.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와 베를린 근교의 작센하우젠은 역사박물관을 세웠고, 요코하마의 ‘고가네초’와 베를린의 ‘뷜로키츠’는 성매매 지역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고 관광객 유치에 성공했다. 모두가 함께 고민한다면 해결책이 있다고 믿는다.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은 가해자의 역사이지 현재와 미래를 위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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