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고용승계를 주장하며 구미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한 지 300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몇주 전, ...
지난 2일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고용승계를 주장하며 구미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한 지 300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몇주 전, 최현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장이 말해줬습니다. 300일이 되는 날 ‘연대버스’가 올 거라고.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버스를 타고 고공농성장으로 모인다고. 조금 부담스러웠습니다. 정말 이곳에 올까? ‘너무 조금 오면 어쩌지’라고 생각하다 보답은 해야겠다는 마음에 노래를 연습했습니다. 7명 남은 동료들과 같이 ‘노동의 꿈’을 부르기로 했습니다. 동료들은 연대버스 무대에서, 나와 소현숙 언니는 고공에서. 밥을 먹고 걷기 운동을 하면서 가사를 입에 붙였습니다. 발언문도 진부하지 않았으면 싶었습니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말고 더 좋은 표현이 없을까 하면서 쓰고 또 고쳤습니다.
사실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2022년 11월4일, 회사는 200명 전체 노동자에게 청산을 통보했습니다. 고용을 책임지라고 노동조합으로 뭉친 이들에게 가압류·가처분을 진행했습니다. 퇴직 위로금을 받고 싶으면 일본어로 반성문을 써서 내라고도 했습니다. 노조는 공장을 지키며 싸웠고, 회사는 물리적으로 공장을 철거할 계획이었습니다. 구미시는 철거를 승인했습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습니다. 눈발이 뼛속을 찌르던 지난 1월8일, 고공에 오르기까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춥고, 뜨겁고, 적막하고, 긴 싸움이 될 줄은요. 이토록 사람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요.
지난 2일 아침 7시에 눈을 떴습니다. 고공에선 대형 현수막을 고정하고, 고공 아래에선 수많은 응원 메시지가 형형색색 만국기 줄에 달리고 있었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니 명절 아침 같았습니다. 고공 천막 안에서 현숙 언니랑 발언도 다시 살피고 마지막 노래 연습도 했습니다. 조용했던 공장이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천막을 나와 보니 버스와 자동차가 쉴 새 없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수십명이었던 사람이 몇백명, 1000명이 돼 공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들 모두 분홍 스카프를 했습니다. 우리를 응원하는 표시였습니다. 목에, 팔에, 머리에 두르고 다들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마음이 몽글몽글, 느낀 적 없는 설렘이었습니다.
연대버스는 예전에 고공농성을 했던 사람들이 제안했다고 합니다. 제안자들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 가운데 기륭전자 윤종희 동지가 마이크를 잡은 게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고공농성 했을 때 잘 씻지 못해서 머리에 이가 생겼어요. 위에 두 동지가 얼마나 힘든지 짐작됩니다.” 조금 부끄럽지만,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공은 물이 귀해 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머리를 감는 건 어쩌다 한 번. 그래서 고공에 올라온 초기에 스트레스였습니다. 평생 비듬 없이 살았던 저였으니까 말이죠. 역시 경험자는 달랐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대에 오른 이들이 고공에서 싸우고 모두 이겼다는 사실. 그 사실이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연대버스 집회가 이어질수록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 나의 일이라서 내가 투쟁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힘을 주겠다고 전국에서 1000명이 여기까지 와줬기에 ‘황송함’마저 들었습니다.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여기 모인 이들이 조금 길어질 수도 있는 싸움에 함께할 사람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씩 떨어지는 낙엽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큰 나무의 연대를 보았으니 말이죠. 고공농성장 앞에서 봤던 큰 나무의 씨앗이 전국 곳곳으로 퍼지고, 또 자라 연대의 숲을 이루지 않을까. 그 숲은 비를 막아주고, 쉴 곳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상상하니 꼭 이겨서 땅을 밟아야겠다, 다시금 다짐합니다. 희망을 마음에 가득 채운, 참 좋은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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