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백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
몇 해 전 초등학교 정보 담당 교사였던 나는 뜬금없이 교육청에 학생 명단을 제출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유인즉슨, 모든 학생들에게 태블릿PC를 1대씩 배부하기 위해 명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공문을 보고 나는 두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하나는 ‘왜 묻지도 않고 사줄까’였고, 다른 하나는 ‘프린터 먼저 사주면 안 될까’였다. 전자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정작 교사나 학생에게 묻지도 않은 교육청에 대한 반발심이었고, 후자는 예산 사용에 대한 우선순위가 잘못되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이 교훈은 AI디지털교과서에도 적용된다. 여러 쟁점 사항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지만, 사실 AI디지털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한 가지 주제로 압축된다. 바로 ‘AI디지털교과서가 투입된 예산만큼의 가성비를 뽑을 수 있는 기자재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AI디지털교과서의 가격은 교육부·시도교육청이 각각 산출한 구독료를 기준으로 협상을 통해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부 업체들은 학생 1인당 월 8,000원을 희망하고 있으며 교육청은 학생 1인당 월 5,000원을 바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교육부의 답변은, ‘세계 최초의 시도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고, 개선해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로 요약된다. 한마디로 AI디지털교과서의 정확한 효과는 아직 알 수 없으니, 일단 학교에서 실험해보겠다는 뜻이다.이 충격적인 발언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021년 한국에듀테크산업협회가 개최한 정기총회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물론 교육부 장관이 되기 직전에 한 발언이지만, 이러한 생각은 아직도 유효한 듯하다. AI디지털교과서를 비롯한 윤석열 정부 디지털교육 정책의 철학과 관점이 전부 이 발언 안에 담겨있다. 정부는 왜 학교를 에듀테크 실험장으로 사용하려 할까? 왜 충분히 검증하고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급박하게 각종 반발을 무릅쓰고 AI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려 할까? 이 질문의 답은 결국 돈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Chat GPT가 자동으로 작성해준 글을 자신이 직접 작성한 것처럼 학습 과제로 제출하는 등, 악용 사례가 알려지면서 찬물이 끼얹어졌다. AI의 교육적 활용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미국 일부 주에서는 실제로 생성형 AI의 교육적 활용을 규제하는 규칙까지 제정했다. 교육부는 이미 지난 5월 성적 등 학습데이터를 민간기업과 연구자들에게 전면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공교육에 투입해야 할 공적 자금을 퍼붓는 것으로도 모자라, 학습데이터까지 민간기업에 전면 제공하고, 데이터 관리를 비롯한 교과서 시스템 운영의 주도권을 민간기업에게 넘겨주겠다는 계획은 지나치게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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