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지금 우리 깨우러 온 거예요?”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만난 청년은 그 한마디로 내 아름다운 말에 흠집을 내버렸다. 교도소에서 인문학 특강을 하던 중이었다. 그날 나는 중...
“그래서 지금 우리 깨우러 온 거예요?”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만난 청년은 그 한마디로 내 아름다운 말에 흠집을 내버렸다. 교도소에서 인문학 특강을 하던 중이었다. 그날 나는 중국 작가 루쉰이 의 서문에 썼던 ‘철방에 잠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절대 부술 수 없고 창문도 없는 철로 된 방. 수많은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모두가 곧 죽겠지만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고통이나 슬픔 같은 것은 느끼지 못한다. 루쉰은 물었다. 이 사람들을 깨워야 하는가. 죽음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 어쩌면 행복한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를 사람들, 어차피 살아나갈 방법도 없는 이들을 깨워야 하는가.
내 스스로 꽤 그럴듯한 말을 했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가 한 줌의 소금을 뿌렸다. ‘재수 없는 소리 그만해라’, 그의 눈빛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었지만 그날 내 계몽주의는 파탄났다. 지난 연말에 산문집 을 펴내면서 이때의 일을 에필로그에 실었다. 시간이 좀 지났으니 체기처럼 남아 있던 말을 소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의 물음에 괜찮은 답변을 할 수 있다면 책의 마무리로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았다. 그러나 모두가 꾸며낸 말이었다. 철방 청년의 말은 여전히 눈을 치켜뜨고 있는데 내 글은 그 눈을 덮기 위해 안달하고 있었다. 몇번이나 글을 고쳐 쓰다 포기한 나는 저 말을 어찌할 수 없노라고 고백하고 글을 맺어야 했다.
쓰루미 슌스케의 산문집 를 뒤늦게 읽었다. 이 책에는 실패가 건넨 말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그는 그 말들을 듣기 위해 기꺼이 패배의 장소로 걸어 들어간 사람이다. 태평양전쟁 중 미국에 있던 그는 일본의 필패를 예감하고도 귀국해서 참전했다. 군국주의 일본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그 반대였다. 그는 “나의 ‘나라’와 함께 패배하는 쪽에 서 있고 싶다”고 썼다. 패배한 나라에 “‘영어 가능자’의 신분으로”, 다시 말해 성공한 자로 귀국하고 싶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는 언제나 성공에서 성공으로 갈아탔던 엘리트들, 그 상습적인 전향이 얼마나 기괴한 것인지도 모르는 엘리트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실패를 실패로 겪지 않는 한 일본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본의 유력가 집안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했던 이 초엘리트가 반전평화 사상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패배의 자리로 걸어가 기꺼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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