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로 믿고 살아온 지 23년…돌아오기 위해 ‘순수 외국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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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로 믿고 살아온 지 23년…돌아오기 위해 ‘순수 외국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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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25일 한겨레는 ‘떠나야만 돌아올 수 있는 길’에 오르는 한 몽골인 미등록 이주청년과의 동행을 시작(토요판 커버스토리 ‘나는 지금 모르는 나라로 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했다. 1998년 엄마를 따라 한국에 온 6살 아이 ‘호이준’(가명)은 한국명

6살 몽골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한국에서 23년을 살아온 김호준씨가 2021년 7월15일 출국을 앞두고 인천공항 법무부 출입국서비스센터 인근 복도에서 ‘자진출국 확인서’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문영 기자 [email protected]‘나는 지금 모르는 나라로 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대학 생활을 이야기하고, 부모님이 사준 자동차를 자랑하고, 새로 시작한 연애 고민을 상담하고, 준비 중인 진로를 두고 정보를 주고받았다. “누군가 재수 생활의 괴로움을 토로했을 때 재수도 하지 못하는” 호준은 “나만 다른 세계에 고립돼 있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멀어졌다. 공장에서 임금을 깎이거나 부당한 일을 당하면 “항의하는 대신 상대가 기분 상할까 눈치를 봤”다. “저 사람이 나를 신고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분노를 이겼다. 극도의 무력감으로 몸이 상하고 성격이 바뀌었다. “손이 떨리고, 뒷목이 땅기고, 눈이 충혈되는” 날들이 쌓일수록 “밝고 외향적”이던 그는 “말수 적고 내성적”인 사람으로 변해갔다.

. 법무부 방안은 권고 348일 뒤에 나왔다. 국내에서 출생해 15년 이상 살아온 경우에 한해 고등학교 졸업 뒤 임시체류자격을 부여했다. 몽골에서 태어난 호준에겐 ‘구제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 국내 법질서를 저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환호인지 걱정인지 모를 탄성들이 터졌다. 13차례 취소되고 14번째 잡힌 출국 일정이었다. 호준이 올린 비행기표에 찍힌 날짜는 7월15일이었다. 출국명령서가 지정한 첫 출국기한으로부터 1년이 꽉 찬 날이었다.2021년 7월15일 인천공항 법무부 출입국서비스센터 앞에 선 김호준씨가 출국확인서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몽골인들 사이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문영 기자이틀 뒤 영아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웃었다. “무사히 다녀오라”며 긴 초 3개를 꽂고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호준이 바람을 ‘후’ 불어 초를 껐다. 보내는 사람들은 축하든 위로든 할 준비를 못 했는데 호준이 혼자 ‘의식’을 끝내 버렸다.

사흘 전부터 코로나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되고 있었다. 1년 전 확진자 급증으로 출국이 막힌 호준이 마침내 한국을 떠난 날은 국내 신규 확진자 발생 역대 최다를 기록한 이튿날이었다.호준은 떡볶이로도 괜찮지 않았다. 다시 밟을지 알 수 없는 한국 땅을 떠나며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렸다.“뭘 포기해. 아직 아무것도 시작 안 했어.”엄마가 문 잠근 집 안에서 한국인지 몽골인지 몰랐던 어린 시절처럼 호준은 몽골에서도 문 잠긴 방에 격리돼 “몽골인지 한국인지 체감하지 못했”다. 호텔을 나온 뒤엔 할머니 집에 머물렀다. 격리는 풀렸지만 한동안 자가격리 하듯 지냈다. ‘생소한 것’이 ‘무서운 것’은 아니란 사실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익숙함’의 역할이 컸다. 집 근처에서 한국 편의점과 기업 상호가 드물지 않게 눈에 띄자 호준도 마음이 놓였다.

호준이 출국을 기다리는 동안 2년제 대학 진학을 준비한 것도 그래서였다. 외국인 전형은 ‘정원 외 선발’이라 경쟁률 걱정도 적었다. 학교별 전형 방식 비교부터 자기소개서 작성까지 사강이 하나하나 조언했다. 입학 지원은 몽골에서 해야 했다. 대학들은 “미등록 신분으론 서류 접수가 불가능하다”며 “‘본인 나라’로 나가 지원하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배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어능력시험만 출국 전 최고 등급으로 받아뒀다.호준이 주몽골 한국대사관을 찾아간 까닭이 있었다. ‘외국에서 지원할 경우 반드시 해외은행예금 잔고증명서 첨부’를 요구하는 학교 때문이었다. 출국 전 호준은 한국에서 일해 번 돈을 미등록 몽골인의 예금도 받아주는 한 은행에 맡기고 잔고증명서를 발급받았다. 2천만원을 채워 예치하느라 출국 땐 사강이 환전해준 돈 30만원만 들고 나왔다. ‘해외은행 증명서’를 제출하려면 한국에서 몽골로 송금해야 하는데 공인인증서가 없는 호준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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