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은 야에 있으나/ 현실은 여에 있었다/ 꿈은 진보에 있으나/ 체질은 보수에 있었다/ 시대는 이런 사람에게 술을 주었다.”(고은 ‘만인보’ 남재희 편) 살아생전 남재희(1934~2024)는 ‘방외인’을 자처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는 방외인이 아니었다. 머리
살아생전 남재희는 ‘방외인’을 자처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는 방외인이 아니었다. 머리와 가슴으로는 진보를 그렸으되 몸은 한 번도 체제를 벗어난 적도, 이탈을 시도한 적도 없다. 심지어 유신 본당과 전두환의 직할 정당에서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독재에 부역했던 셈이다. 그러니 고은의 표현대로 남재희는 생의 대부분을 ‘모순’과 ‘긴장’ 속에 산 사람이었다. 그 번민을 다스리려 술을 마셨고, 취기가 오르면 빨치산의 애창곡 ‘부용산’을 불렀다.
시작은 언론인이었다. 1958년 한국일보 기자로 시작해 조선일보 문화부장, 정치부장을 지낸 뒤 서울신문으로 옮겨 편집국장을 했다. 조선일보 정치부장으로 있던 1960년대 중반, 당시 국제부장이던 리영희와의 충돌 사건은 오래 회자됐다. 오전 편집회의 때 기시 노부스케 일본 총리의 방한과 베트남 파병 이슈 가운데 어느 것을 1면 머리기사로 올릴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다툼은 초판이 나온 뒤 몸싸움으로 번져 육중한 전화기 여러 대가 편집국 책상 위를 날았다. 두 사람은 ‘회사 내 진보파’에 속했으되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로를 경원했다.서울대 법대 재학시절 이승만 양아들 이강석의 부정입학 규탄 시위를 주도하긴 했어도 ‘행동가’는 아니었다. 사상적으로 사회주의에 기운 적은 있으나 훗날 영국의 페이비언주의를 접한 뒤 온건 사회민주주의로 방향을 틀었다. 기자 시절엔 조봉암의 진보당 등 혁신정당을 출입했고 그 인연으로 혁신계 인사들과 오래 교류했다.
1987년 민주화 뒤 김영삼 정권 아래선 노동부장관을 지냈다. 현대중공업 파업 당시 확대국무회의에서 ‘특단의 조치’를 강조하는 대통령을 향해 “각하, 안 됩니다. 시간을 주시면 제가 원만히 해결해보겠습니다”라고 외친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장관 재임 당시엔 복수노조를 지지하고, 단병호·이갑용 등 이른바 ‘전투적 노동운동’ 쪽의 지도자들과 빈번히 만났는데, 그게 빌미가 돼 한국노총 등 보수적 노동계 일부로부터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이념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다.만년엔 회고록과 정기간행물 연재 등 집필 활동에 집중하는 한편, 틈나는 대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정의당으로 이어진 진보정당 내 평등파 그룹과 교류했다.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을 응원했고, 심상정 등 현역 의원들은 물론 김종철·신장식 등 원외의 젊은 정치인들에게도 수시로 조언하고 자문했다.
생의 대부분을 술과 책과 사람을 벗해 살아온 남재희는 지난 16일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잔디 푸른 부용산 허리를 돌아 하늘로 떠났다. 그가 만개하길 희망했던 “붉은 장미”는 여전히 피어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최근 뉴스, 대한민국 헤드 라인
Similar News:다른 뉴스 소스에서 수집한 이와 유사한 뉴스 기사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보수 진보 넘나든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별세‘광주사태’→‘광주민주화운동’ 근로자의 날 ‘3월10일’→‘5월1일’ 바꾸기도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보혁 넘나든 '체제 내 리버럴'…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별세(종합)(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5공화국 핵심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진보(혁신)와 교류에 애쓴 남재희(南載熙) 전 노동부 장관이 15일 오전...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보혁 넘나든 '체제 내 리버럴'…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별세(종합2보)(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5공화국 핵심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진보(혁신)와 교류에 애쓴 남재희(南載熙) 전 노동부 장관이 15일 오전...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여성 최초 아나운서실장… 강영숙 전 예지원장 별세여성 최초 아나운서실장… 강영숙 전 예지원장 별세 - 10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김문수 '박근혜 탄핵 잘못, 그분 뇌물죄면 나도 뇌물죄…뻘건 윤석열? 집회 중 감정적 발언'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오늘(26일) 인사청문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관련해 “탄핵은 잘못됐다“고 주장했습니다.--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잘못됐기 때문에 역사적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하나회 술자리서 ‘술잔 투척’ 남재희…노태우는 “맞아볼래” 협박고 남재희(1934∼2024) 전 노동부 장관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그와 직간접적 인연을 맺은 언론계와 정치권 인사들의 추모글이 에스엔에스 등에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시대의 조정자’ ‘체제 내 리버럴’이라는 수식어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고 진영 간 경계를 가로질렀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