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이곳에 묵념 한번 하는 정치인이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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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읽는 한국전쟁 37] 학도의용군

국립서울현충원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현충문과 현충탑을 보게 된다. 텔레비전에서 종종 보는 바로 그곳이다. 일군의 무리를 이끌고 참배하러 나타나는 소위 거물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곳이다.

무명이나 학도 그리고 의용과 용사란 말이 다가온다. 현충원에서 장군이니 대통령이니 하는 거창한 타이틀보다 고요하고 진하게 스며온다. 학업이란 기회와 특권을 버리고 자발적으로 전선에 나섰으나, 공훈록은커녕 전사자 명단에도 이름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무연고 유골로 남은 사람들이다. 살 만큼 산 게 아니라, 귀하디귀한 청춘시대에 참혹한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니 그 애처로움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로 병역면제 대상자보다 범위를 확장해서 정의하는 학도의용군이다. 참전 당시 학생이었고 참전 의지가 자발적이라고 판단되는 모든 학도병들이다. 이들은 각급 부대에서 복무하다가 군번을 부여받아 정규군 신분으로 전환된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국가가 위험에 처하자 법적인 징집 대상이 아니었지만 자발적으로 나섰다는 것에 대해 충분히 존경을 표시해야 한다는 취지다.

좁은 의미의 학도의용군이 공식적으로 종료된 1951년 4월 이후에도 현역도 아닌 채로 유격단체나 비정규전 부대에 소속돼 활동하거나, 북한 지역에서 학도의용군 단체 등을 조직하여 활동한 이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3만5000~4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 예를 들어 옹진학도유격대, 태극단 학도의용군 그리고 후방 각지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던 학도의용군들 이에 속한다. 학도의용군은 인민군의 남침 직후에 바로 시작됐다. 학도의용군이란 맥락에서 최초의 움직임은 6월 27일 서울문리대 학생들이 조직한 '학도위문대'다. 학생들이 참전 가능성 등을 문의하자 평소 학도호국단을 잘 알고 있던 국방부 정훈국장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간식과 음료를 준비해서 미아리와 청량리까지 후퇴해 온 장병들을 위문하는 수준이었다.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하겠다는 행동을 직접 유발한 것은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6월 28일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고 서울이 북한 인민군 수중에 떨어지자 국군은 물론 피란민들과 학생들도 목숨을 걸고 한강을 도하했고 수원에 모여든 학생 200여 명이 6월 29일 국방부 정훈국 후원 아래 '비상학도대'를 결성했다. 서울 경기 지역의 전국학련 이북한련 반공학련 출신들과 학도호국단 간부 일부가 참여한 것이다.

대한학도의용대의 학도의용군은 국군 10개 사단과 예하 부대에 배속돼 전쟁에 참여했다. 낙동강 전선 곳곳에 배치됐고, 다부동, 안동, 기계, 안강, 영천, 포항, 창녕 등 최후의 방어선에서 군번도 계급도 없이 싸우다가 적지 않은 숫자가 전사하고 말았다. 최후의 방어선에는 학도병의 시신도 수없이 쌓여 반격의 발판이 된 것이다. 요동치던 전선과 후방업무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이승만은 1951년 2월 28일 학도의용군의 학교 복귀를 지시했고, 이에 따라 대한학도의용대는 해산했다. 이때 전선에서 군번 없이 학생 신분 그대로 참전하고 있던 학생들은 많은 수가 학교에 복귀했다. 4월 3일에는 학도의용군을 지도하던 국방부 정훈국 예하의 정훈공작대가 해산함에 따라 학도의용군은 공식적으로 활동을 종료했다. 대한한도의용대가 해산할 때까지 2만7700명이 전투에 참여했고 27만여 명이 후방에서 선무공작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학도의용군의 참전동기를 애국심이라고 집약해서 말하지만 이것은 당시의 정치적 맥락에서 남침이란 자극을 받자 행동력이 강하게 발현된 것이다. 한국전쟁 개전 직후에 앞장서서 참전한 이들은 그 이전부터 활동해오던 우익 학생단체 또는 학도호국단과 직접 연결돼 있다.

일제패망 이후 남북분단과 좌우갈등 속에 모든 정치단체 사회단체는 물론 학생단체들도 당시의 정세에 깊숙이 결합돼 돌아갔다. 간부 학생들은 정세의 변화에 민감했고 그에 따른 행동 역시 빠르고 열정적이었다. 개전 초기에 서울을 점령당하는 최악의 전세에서 오히려 강력하게 반발하듯 자발적으로 참전을 선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승만의 학생들의 예비전력화 정책과 학생단체 간부들의 정치적 성향과 열정이 맞물려 학도의용군으로 나타난 것이다.정부 수립 후 최초의 병역법은 1949년 8월에 공포됐다. 병역법은 국민개병제에 의거하여 남성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가하고 여성은 지원해 입대할 수 있도록 했다. 병사행정을 담당하는 병사구사령부를 서울과 도청 소재지에 두고 국방부의 병무국이 이를 관장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1950년 1월 대한민국 최초의 징병검사를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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