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 최시형 선생은 동학혁명의 지도자로서 사람섬기기와 천명을 강조하며, 동학의 가르침을 통해 세계 평화를 추구했습니다.
해월, 사람섬기기 를 한울님 같이 「필자는 그동안 삶에 있어서 국내외 여러 위인과 성인들의 면모를 숭상해왔으나, 솔직히 고백하면 해월 최시형 선생을 가장 존경한다. 해월 선생은 한울님이 사람으로 현신하신 것처럼 사람이 한울님이라는 사상을 실천하신 분이다. 그래서 해월 선생님을 뭐라 표현하기가 쉽지 않아 '거룩한 성자 해월 최시형 선생님' 즉 해월 스승님이라 부른다. 해월 스승님은 사람이 어떻게 살 것인가의 가르침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알려주신 분이다. 해월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행한다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인류와 자연만물이, 지옥과 같은 전쟁을 벗어나고 천국과 같은 평화가 열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개벽, 다시개벽, 후천개벽의 세상이다.」 한편 해월 최시형 법헌과 의암 손병희 통령 일행은 보은 북실과 음성 되자니의 최후 전투 이후, 충청도와 강원도 일대의 깊은 산속을 전전했다. 전봉준·손화중·김덕명·최경선·성두환·안교선 등이 사형을 당하던 3월 30일(양4.
24)경에, 해월 선생은 수제자들과 함께 음성 이춘백 제자 집에 있었다. 해월 선생은 곧 동학군 지도자들의 사형 소식을 듣고 식음을 전폐하여 비통해 하였다. 갑오년과 같은 운수가 다시 올 것이니 그런데 일부 제자들은, '전봉준의 반란으로 우리 동학이 이처럼 고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자 해월 선생은 차분한 목소리로 '수운 대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천도(天道)·동학(東學)은 5만 년 이어진다고 하셨네. 그런 망언은 다시는 하지 말라. 갑오년의 일은 사람의 사심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천명으로 일어난 것이네. 민심이 곧 천심이니 그 누구도 전봉준을 욕하지 말라. 앞으로 갑오년과 같은 운수가 다시 와서 갑오년과 같은 일들을 다시 하게 되면, 세계 인민들의 정신을 불러일으킬 것이니라'고 말씀하였다. 해월 선생은 천도·동학을 수십 년간 지도하면서, 수운 대선생 때 3천~5천(부인, 자녀 포함 1만)명 이던 동학도인을 1백만 명으로 포덕하여 조선 일대에 동학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선생이 동학농민혁명 때 무력 기포를 반대한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이필제 무력 혁명에 동참하여 엄청난 피해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전봉준의 의거처럼 피 흘리는 혁명에 의해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보다, 사람 개개인의 정신을 개벽하여 자연스럽게 사람이 하늘인 새 세상을 열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본군의 침략을 당하게 되자 수운 대선생의 명교를 실천하기 위해 결국 동학군 총기포령을 내리게 되었다. 해월, 역사에 길이 남을 법설 해월 최시형 선생은 동학혁명이 좌절된 후, 3년 동안 인제·원주·충주·음성·청주·상주·음죽·앵산동·전거론·방아재·옥천 등으로 피신해 다니며, 동학 재건에 힘쓰고 역사에 길이 남을 법설을 남겼다. 해월 선생께서 남긴 대표적인 법설에는, '천지가 곧 부모요, 부모가 곧 천지'라는 '천지부모설'과 '사람이 곧 하늘이요, 만물도 하늘 생명이니 사람과 자연을 한울님처럼 공경하고 대하라'는 '대인접물설'이 있다. 또 세상이 크게 변할 것이라는 '개벽운수'와 제사를 지낼 때 벽을 향하지 말고 자신을 향해 지내라는 '향아설위' 등이 있다. 그리고 여성과 아이들을 한울님처럼 섬기고 공경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해월 최시형 선생 피체되다 해월 최시형 선생은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며 '천명이 가까워진다'는 말과 함께 손병희에게 동학의 종통(3세 교주)을 넘겼다. 선생은 일본군과 관군의 수년에 걸친 추적 끝에 결국 원주 송골에서 피체되었다. 그날은 1898년 4월 5일(음) 수운 대선생 득도기념일로, 해월 선생은 청수를 모시고 조용히 기도하면서 주문을 읊고 있었다. 손병희 등 동학 지도부에게 '이번 향례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지내라' 하고 제자들을 떠나보낸 후였다. 해월 선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혀 반항하지 않고 체포에 응하였다. 해월 선생은 4월 6일 새벽에 여주 문막에서 배편으로 한양에 압송되었다. 즉시 광화문 경무청에 구금되어 10일 동안 조사를 받고 서소문 감옥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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