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못 읽는 엄마와 가끔 영상통화를 합니다 한글 영상통화 전미경 기자
엄마랑 영상통화 하면서 하는 말. '위아래'. 주문에 맞춰 엄마가 우편물을 움직인다. 카메라를 향해 잘 보이게끔. 이리저리 각을 맞춘다. 지난번엔 서툴더니 이번엔 잘하신다. 센스가 생겼나 보다.
틈틈이 엄마 이름 석 자와 중요한 품목 정도를 알려드렸다. 삐뚤빼뚤 칸을 채우며 한글 연습을 했다. 필요한 글씨만 익힌 셈이다. 그것도 받침이 있는 글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살아온 자체가 기적일 때가 많다. 간혹 그걸 약점 삼아 외상 한 적 없다며 우기는 사람도 있다. 글 모른다며 비웃던 사람도 있다. 한글 몰라 온갖 수모 견디며 살아온 세월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팽개쳤을 법도 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오셨다. 평생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자식들에게 고통을 나눠지게 하지도 않았다. 우수한 '한글'처럼 그렇게 뿌리 깊은 나무로 살아오셨다.그런 단단하신 엄마가 요즘 한글 때문에 속상해한다. 한글만 알면 노래도 잘하고 스마트폰도 잘 만질 텐데 하면서. 그 힘든 시절에도 한글 타령 안 했던 엄마가. 스마트폰 때문에 자신을 탓한다. 한글 몰라 부끄러웠을 법도 한데 당당히 장부책을 펼쳤고, 삐뚤삐뚤 영수증 칸을 채워나가도 쫄지 않으셨던 분이다.
한글 모르는 게 죄는 아닐 텐데 죄인처럼 움츠려 계신다. 그 마음을 다 알 순 없다. 그 상황이 돼보지 않았으니 감조차 잡지 못한다. 한글을 모른다는 건 정말 어떤 건지 가늠조차 안 된다. 외국 가서 말 안 통하는 것을 상상해 봐도 다른 맥락이다. 한글을 모르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없다. 좋아하는 책도 읽을 수 없다. 불편한 걸 떠나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 글이 주는 온기를. 연애편지의 온기를 느낄 수 없었던 그날의 엄마가 애처롭다.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괜찮다'는 말뿐. 별거 아닌 거처럼 허허 웃는다. 사실, 엄마는 한글만 잘 모를 뿐 다른 것들은 기막히게 습득하신다. 한 개 알려드리면 두 개 세 개를 아신다. 영상통화로 우편물 확인하는 것도 엄마가 제안하신 거다. 나는 생각조차 못 했다. 조만간 집에 가겠다고만 했다. 그런 나에게 "카메라로 보면 되잖아" 하길래 CCTV를 떠올렸다. 멍청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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