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일본인 독립운동가 후세_다쓰지 박열 박열과_가네코_후미코 가네코_후미코 일본인_독립운동가 임영열 기자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현재까지도 일본 정부는 우리의 영토인 독도에 대하여 일방적 주장을 거듭하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 시절 위안부, 강제징용 등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최근에는 핵 오염수 방류 문제가 양국 간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보훈처의 자료에 따르면 2023년 5월 기준 약 1만 7800여 명의 독립유공자가 있다. 이 중에서 외국인 유공자는 75명으로 약 0.4%에 해당한다. 이들을 국적별로 살펴보면 보면 중국인이 가장 많고 미국, 영국, 캐나다 순이다. 박열과 후미코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변호사 후세 다쓰지의 도움으로 옥중 결혼한다. 이후 후미코는 교도소 감방에서 죽음으로 발견됐고 박열은 22년을 복역한 후 1945년 석방된다. 일본 정부 내 반체재 인사로 낙인찍힌 후세는 1932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변호사직을 박탈당하고 그의 아들 후세 모리오는 옥사한다. 일제 패망 후 변호사직을 회복한 후세는 조선인의 인권과 선거권을 위해 노력했다.
조선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고모집에서 쫓겨나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후미코는 1920년 동경으로 상경하여 신문팔이와 노점상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학업을 이어나갔다. 이때 후미코는 조선인 사회주의자들과 교류를 시작하며 영향을 받았다.고향을 떠나 동경 유학길에 오른 박열은 동경 간다에 있는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신문배달, 우편배달부, 인력거꾼 등 온갖 밑바닥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여러 유학생 단체에 가입하며 학업을 이어 나간다. 이때 일본 내 무정부주의자들과 접촉한다. 서로의 강열함에 이끌린 두 사람은 동거에 들어간다. 후미코를 만난 박열은 아나키즘단체인 흑도회와 흑우회 등에 참여하며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1923년 박열과 후미코는 항일 운동단체인 '불령사'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의열투쟁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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