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창고에서 얼어 죽은 형제... 그들을 옭아맨 황당한 죄목 담가 국방경비대 남로당 곡물창고 부역혐의 박만순 기자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곡물창고 문이 열렸다. 담가를 든 두 청년이 창고에서 뚜벅뚜벅 발걸음을 뗀 것은 해뜨기 직전인 오전 7시였다. 하루 중에 가장 추운 해 뜨기 직전이어서인지, 초겨울에 내린 진눈깨비 탓인지 청년들의 귀는 빨갰다.담가에 올려진 것이 지난밤 추위를 이기지 못한 누군가의 시신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가마니로는 꺼멓게 변한 시신 발까지는 덮지 못했기 때문이다. 뒤따르던 청년이 떨리는 목소리로"좀 쉬었다 가세"라고 말하자, 앞선 청년도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그려"라며 응답했다. 담가를 내려놓자마자 진흙투성이들이 담가를 적셨다."빨갱이덜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이랴."차라리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은 쉽게 모아졌다. 다시 담가를 든 청년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갈 심산이었다. 300미터나 갔을까, 청년들의 귀가 빨갛다 못해 거무튀튀하게 변할 때였다.
"지 시동생이구만요. 지발 우리 집에 묻게 해주시오"라며 손을 비비는 여성을 본 청년들은 차마 내치지 못했다. 어차피 공동묘지 땅이 쉬이 파질 리도 없는 터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충남 서산군 태안면 남문리 지동목의 시신이 태안 공동묘지에 묻힌 것은 1950년 12월 초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이었다.곡물창고에 갇힌 이들이 내리 굶고 있다는 소식에 태안면 반곡리 김태순의 어머니는 가슴을 졸였다. 귀한 아들이 '굶어 죽는 것은 아닌가'히는 걱정이 앞선 것이다. 그녀는 누룽지를 만들어 가슴에 품고 싸리문을 나섰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낮에는 주변의 눈이 있어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하마터면 '아!'하고 소리를 낼 뻔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김태순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올 때 그의 어머니가 쏜살같이 아들에게 다가갔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녀는"암말 말고 누룽지 얼른 삼켜라"라고 했다. 아들 김태순은 목이 매었지만 눈물 반 콧물 반을 하며 누룽지를 꼭꼭 씹었다. 조금 떨어진 창고 입구에서 보초를 서던 신성우는 이들 모자의 상봉을 눈감아 주었다. 지동목이 달구지를 끌고 다니다가 여성 의용경찰 집의 흙담 모퉁이를 훼손했다고 시비가 붙은 게 문제였다. 큰일도 아닌 일이 군경 수복 후 '빨갱이 죄'로 둔갑했다. 그는 곡물창고에 구금되었다가 초겨울의 매서운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 담가에 실려 나왔다.
태안면 지동목·지동우 형제가 황당한 이유로 '부역혐의자'로 연행되었다면 당시 서산군 일대에서는 대대적인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이른바 인공시절에 북한군을 도운 빨갱이들을 잡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이들에게 휘발유를 뿌린 이는 누구인가?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김〇환이라는 사람이 뿌렸다는 소문이 있었다. 보고서에는 그의 소속과 전력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동기는 그가 일제강점기에 경찰을 역임했으며, 해방 후에는 서북청년회를 후원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보도연맹원들을 불태우고 총살한 태안경찰들은 태안우체국 앞에서 목탄버스에 몸을 싣고 이북면과 남면 사이에 있는 백사장으로 집결했다. 그곳에서 인근에 있는 배를 동원해 남쪽으로 후퇴했다. 당시 안흥면에 있던 통통배도 동원되었다고 한다.1946년 1월 국방경비대가 창설되자 태안면 백화산에 은거하고 있던 이수호는 즉시 하산했다. 남로당원인 그가 하산한 이유는 국방경비대에 입대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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