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진실 규명 결정1960년 4월24~25일 “정권 퇴진” 내걸고 시위시위 동력 주춤할때 시민들 대규모 참여 이끌어부산시민 마산 원정시위도 추가 사망자 등 확인
부산시민 마산 원정시위도 추가 사망자 등 확인 1960년 4월24일 할아버지 시위대가 마산 시내를 행진하는 모습이다. 진실화해위 제공“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옛날 시골 허연 저고리에다가 검정 고무신을 신고 플래카드를 들고 데모를 했습니다. 행진 길이로 봐서는 한 50m 정도 길 복판으로 갔으니까 한 100명이나 150명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노인들이 나오니까 그 뒤를 꼬마들이 따라다니고….”1960년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끈 마산 3·15의거와 4·19혁명의 시위 현장에서 중고등학생들이 대거 앞장서 참여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시위가 동력을 잃고 주춤해 있을 때 할아버지·할머니들 시위가 시민들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내며 수만명의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당시 여론주도층도 입밖에 꺼내지 않던 ‘이승만 퇴진’ 구호를 선명하게 내걸어 시위의 흐름을 바꾸었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3·15 의거란 1960년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3월15일 부정선거에 반발하여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3·15시위 당시 실종된 김주열군의 주검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상태로 4월11일 마산 중앙부두 앞에 떠오르자 2차 시위가 일어났고, 4월24일부터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참여한 시위가 젊은 시위대와 합류하면서 3차 시위로 이어졌다. 이후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전국단위로 확산했고 결국 4월26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다. 할아버지 시위에 이어 이튿날인 4월25일에는 ‘할머니 시위’가 마산 시내에서 일어났다. 50살 이상 여성 노인들이 참여한 이 시위대는 구마산 강남극장 앞에 집결하여 “죽은 학생 책임지고 리대통령 물러가라”, “정부통령 선거 다시 하자”, “총 맞아 죽은 학생 원한이나 풀어주소”등의 펼침막을 내걸었다. 참여 규모는 최소 200명에서 최대 400명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마산 시민 최대 3만명이 시위대에 호응하여 함께 했고, 경찰이 출동하여 음료수와 물을 나눠주며 해산을 종용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고 계속 농성했다.제2차 마산의거 당시 '김주열군을 사살한 경찰을 학생에게 맡겨라!'라는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시민과 학생들. 3.15의거기념사업회 제공
마산지역 노인 시위는 부산지역 노인 시위에도 영향을 줬다. 4월26일 오전 9시20분께 초량4동 경로당 노인들이 주축이 되어 “이승만 대통령 물러가라” ‘시민을 살해한 경찰은 물러가라” 등의 플래카드를 내걸고 시위를 했다. 이는 부산 시민 20만명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한다.제2차 마산의거 당시 시민들에 의해 불타고 있는 자유당 마산시 당사. 3.15의거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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