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동안 초등학교 우유 배식 아르바이트를 해 온 사람의 이야기. 폭염과 혹한을 겪으며 힘들었지만, 남는 우유를 가지고 돌아왔다는 점이 큰 즐거움이었다.
7일은 초등학교 우유 배식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이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도중에 그만두지 않고 학기 말까지 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다. 그전까지 이런 일 저런 일, 많이 도전해 봤지만 어떻게 된 셈인지 오래 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더러 내가 나오기도 했고 잘리기도 했고, 처음부터 떨어지기도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자신이 없어지자, 점점 더 단순한 일, 최저 시급 일만 찾게 되었다. 이제는 그 고리를 끊고 싶었다. 일단은 그 시작으로 내가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것만 생각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빠지지 않으리라.' 그리고, 해냈다. 마지막까지 온 것이다. 그동안 딱 이틀 일을 쉬었다. 하루는 일 시작 전부터 잡혀 있던 여행 일정 때문이고, 또 하루는 새벽에 귀국하는 아들을 맞기 위해서였다.
이 이틀을 제외하곤 단 한 번의 지각도 없이, 오히려 처음에 급식소 대표가 말한 오전 6시 30분보다 30분 더 빠른 6시까지 매일매일 출근했다. 아무리 단순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끝까지 성실하게 달려온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 가장 힘들었던 건 폭염과 혹한 최저 시급에 단순 노동이라고 해서 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날씨'였다. 8월 20일, 2학기 첫날부터 시작해서 해를 넘기고 1월 7일, 한겨울 가운데 마지막 날을 맞기까지 더위와 추위를 골고루 겪었다. 한창 더울 때 우유 창고 근처에는 모기가 기승을 부렸다. 온몸에 모기약을 바르고 집을 나서야 했다. 몸에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는 곳은 턱선, 목덜미, 발목을 가리지 않고 모기가 달라붙어 피를 빨았다. 집에 오면 땀범벅이라 바로 샤워해야 했다. 가을에는 날씨가 변덕스러워 폭우가 쏟아지는 날도 있었다. 창고에서부터 학교 건물까지 몇 걸음 채 안 되는 짧은 거리지만 우산을 받쳐 들고 낑낑거리며 카트를 끌었다. 겨울이 닥쳐오자 그렇지 않아도 수족냉증인 나는 손발이 얼어붙었다. 기모가 든 작업 장갑을 구입하고 발등에 핫팩을 붙이고 출근했다. 우유를 나르느라 실내외를 오가다 보면 콧물이 흘러 휴지도 항상 가지고 다녀야 했다. 우유가 든 무거운 카트를 옮기는 일이다 보니 허리를 다칠까 항상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허리도 허리지만 의외로 무릎이 아파 고생하기도 했다. 이제 이 모든 일들은 다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좋은 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침 시간을 알차게 쓸 수 있어 좋았다. 학교 일이라서 주말과 공휴일에 다 쉴 수 있다는 사실도 플러스 요인이었다. 비록 아이들을 직접 대할 일은 없었지만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활기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제일 큰 장점은, 남는 우유를 가지고 올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매일 남는 우유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못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몇 개씩 발견할 수 있었고, 덕분에 지난 4개월 내내 우리 집 냉장고는 우유로 가득했다. 요즘처럼 물가 비쌀 때 이렇게 우유가 풍족하다 못해 사치를 부릴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이 좋았다. 비록 대부분이 소비 기한이 간당간당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남는 우유'는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우유가 낭비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현재 서울시 학교 우유 급식은 무상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다 마시지도 않는 우유를 신청하고 또 이렇게 버려지는 우유에 우리의 세금이 들어가고 있다는 현실이 계속 신경에 거슬렸다. 또, 한편에선 이렇게 헤프게 소비되는데, 다른 한편에선 비싼 우유 가격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상황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우유가 남아돌아 문제라는데 왜 시중 우유 가격은 오르기만 하는 걸까? 직접 우유 급식 현장에서 뛰다 보니 정부의 낙농업계 지원 정책, 우리나라 우유 업계의 구조, 나아가 우유 가격이 정해지는 원리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몇 번이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
우유 아르바이트 학교 급식 물가 상승 우유 낭비 낙농업계 우유 가격
대한민국 최근 뉴스, 대한민국 헤드 라인
Similar News:다른 뉴스 소스에서 수집한 이와 유사한 뉴스 기사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우유 배식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 4개월간의 고생과 감동저자는 7일 초등학교 우유 배식 아르바이트를 마쳤다. 처음에는 단순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폭염과 혹한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끝까지 해냈다는 자부심이 크다. 우유를 낭비하는 현실과 우유 가격 상승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정부의 낙농업계 지원 정책 등에 대해 고민한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제주항공 참사 닷새째 유족, 분향소 찾아 애통제주항공 참사 닷새째인 2일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선 이른 아침부터 애통해하는 유족들의 곡소리가 일대를 가득 메웠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일본, '어둠의 아르바이트'로 인한 치안 악화 심각일본에서 '야미바이토'라고 불리는 어둠의 아르바이트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젊은 층을 돈벌이로 유혹하고, 탈세, 범죄, 살인 등 심각한 범죄를 야기하고 있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일본 노인의 아르바이트 현실, 연금 부족으로 65세 이상 근로자 7명 중 1명일본에서 연금만으로 생활이 어렵다는 현실 속에 65세 이상 노인의 아르바이트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에서는 해외 이주는커녕 국내 여행조차 힘든 노후를 영위해야 하는 일본 노인들의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70세의 은퇴 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하시모토씨와 72세의 소아과 사무원으로 일하는 와타나베씨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 노인들의 노동 현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본 총무성 조사 결과, 근로자 7명 중 1명이 65세 이상 고령 노동자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1000년 된 미륵신앙이 열쇠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이 한국에 있으며, 삼국시대에는 절과 탑이 가득 했던 한국의 강한 종교성이 높게 대두되는 소재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
러시아제 첨단 미사일, 미국제 '탱크 킬러' 전투기… 방산 각축장 된 베트남지난 19일 베트남 하노이 외곽 지아람 군공항에서 열린 ‘국제방위엑스포 2024’ 현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베트남 공군 수호이(Su)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