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자유노조 박물관'에서 느낀 연대의 가치
눈의 나라, 설원의 폴란드에 대한 동심을 품고, 나는 폴란드 북부 해안 도시 그단스크에 내렸다. 가이드는 폴란드를 찾은 우리들을 신기하게 여겼다. 대개의 한국인들은 폴란드를 찾지 않는다고 한다. 폴란드 한 나라를 여행하기 위해 열흘을 투자하는 우리를 보면서 한국인답지 않다는 말을 뱉었다.
도시 어디를 가나 벽에 'Solidarity'라는 구호가 쓰인 것을 볼 수 있었다. 보아하니 솔리대리티는 '연대'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이 추구했던 '자유, 평등, 박애'처럼 폴란드 민주화운동이 지향하는 정신적 의미의 어떤 것, '하나 됨'의 뜻을 내포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1980년 7월 폴란드에서 일어난 '자유노조운동'은 1980년 '서울의 봄'과 이어지는 '오월광주항쟁'과 너무나 유사해 박물관에 들어간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날 노동운동을 했던 나는 1989년 현대중공업 파업투쟁과 아주 유사한 것들인, 노동자가 쓴 노란 작업모, 작업화 등이 이곳 폴란드 '자유노조 박물관'에 역력히 보존돼 있음을 보고 넋을 잃었다.폴란드인들은 러시아에 강한 적대심을 품고 있다.
폴란드에서도 1970년에 노동자의 시위가 일어났다고 한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그때 분신했는데, 폴란드 공산당은 시위 노동자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그때 총탄이 관통한 노동자의 작업복을 박물관은 전시하고 있었다. 당시 사망한 노동자를 기념하는 높이 30미터의 기념탑이 박물관 입구에 서 있었다. 폴란드 노동자들은 이후 줄기차게 기념탑을 세워줄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1979년에도 노동자들은 '기념탑을 건립하라'는 요구를 제기했다. 그 노동자의 이름이 '레흐 바웬사'였다. 1970년 '12월 사건'을 목격한 레흐 바웬사는 민주적인 노동조합 결성을 결심했다. 1976년, 바웬사는 '죽은 노동자를 위한 기념탑'을 세우기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안나를 복직하라. 임금을 인상하라. 1970년 12월 죽은 노동자의 기념물을 설립하라."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자유노조를 인정하라." 안나의 복직은 쉽게 수락됐으나 자유노조를 놓고 경영진과 실랑이를 벌였다. 힘든 협상이 개시됐다. 이 무렵 그단스크 인근 공장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합류했다.이후 연대 파업이 물결처럼 퍼져갔다. 전국의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 자유노조를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1980년 8월 20일, 지식인들이 정부에게 성명서를 제출했다. 가능한 빨리 노동자 대표들과 대화할 것을 요구했다. 파업 중인 350여 공장의 노동자들이 '공장간 연대 파업위원회'를 결성했다. 8월 말엔 참여 노동자들이 700여 공장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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