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던 중이었다. 영화 〈딸에 대하여〉의 원작 소설을 읽었던 그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소설과 영화에는 이런 관계들이 등장한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중년 여성 주인공과 그의 딸, 전셋집에서 쫓겨나 주인공 집에 들어와 살게 된 딸과 딸의 동성 연인, 주인공이 일하는 요양 시설 사람들과...
동네 한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던 중이었다. 영화 〈딸에 대하여〉의 원작 소설을 읽었던 그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소설과 영화에는 이런 관계들이 등장한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중년 여성 주인공과 그의 딸, 전셋집에서 쫓겨나 주인공 집에 들어와 살게 된 딸과 딸의 동성 연인, 주인공이 일하는 요양 시설 사람들과 그가 맡아 돌보는 여성 노인. 어디를 봐도 고단하지 않을 법한 삶이 없고, 고상하고 평안한 관계는 기대하기 어렵다.
딸은 안정된 미래를 가꾸며 엄마를 안심시키기는커녕 새로운 세계의 갈등을 끌고 집으로 들어온다. 세상이 허락한 관계 속에서는 오로지 '같이 있는 것'만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 따로 살 수 없다는 동성 연인과 함께. 거기다 딸은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해고된 동료를 위해 함께 싸우고 있다. 혐오의 세계에서 자신의 '소수자성'을 밝히고 사회의 배제를 자처하며 싸우는 딸이 걱정되고 답답하다. 나도 관객들도 함께 탄식을 내뱉었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나는 처하고 싶지 않은' 고단한 길이 아닌가. 남편은 죽고, 딸은 소수자에, 존엄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이 '주제넘은 짓'으로 무시당하는 노동을 하며 사는 그녀의 삶을 영화는 담담하면서도 충격적으로 직면하게 한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세계 간의 충돌을 머릿속에 그려봤을까? 소설을 읽었을 때 궁금했는데, 소설이 영화가 되고 상상 속 인물들의 얼굴이 화면에 등장하자 이유를 알겠다. 돌보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돌보는 이들을 위하다 보면 성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돌봄의 사회적 필요가 점점 더 커지는 사회에서 '여자가 당연히 집안에서 하는 일'로 평가절하된 저임금 필수 노동자의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 이 세계에 대한 성찰을 안 할 수가 없다. 거기에다 가부장적 정상성에 피 터지게 저항하는 딸들의 세계까지 끌고 들어와서 돌봄이 주는 성찰이 새로운 관계를 포용할 가능성이고, 다른 세계를 상상할 힘이라는 것을 이 이야기는 눈부시게 역설한다.그 용기 덕에 얼마 전 한 사업장 노동조합 간부들과 취중논쟁을 벌였다. 젊은 남성 조합원 일색으로 여성도 장애인도 없는 사업장에서 그들은 노동조합의 사회성, 연대와 기여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으려고 해마다 조합원 교육에 대단한 공을 들인다.
아마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매년 그랬듯 그들의 소중한 노력에 감동하고 현상 유지를 위한 교육 준비에 최선을 다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성 직군-여성 직군'의 양극단 중 가장 좋은 쪽 가까이 있는 동료들의 삶이 이제는 위험해 보인다. 다른 쪽 끝 가까이의 엄마와 딸들은 이런 세상에 살 수가 없는데, 우리는 보호시설에서 사랑받는 푸바오처럼 이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좋은 노동조합'의 '가족임금 받는 가부장'이라는 멸종 위기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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