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만보] 항일운동가 이관술의 손녀딸 손옥희의 호소 ②
손옥희는 할아버지의 동경고등사범 사진에서 눈을 거두고 호소문을 이어서 써갔다. 쓰면서도 멈칫멈칫한다. 과연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구속자의 유족은 모일 수 있을까? 골령골 유족은 수천 명에 이르고 불법학살임이 분명하지만 정판사 피고인은 열명에 불과하고 경제사범, 파렴치범으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70여년 가까이 꼭꼭 숨어 지냈을 터인데 과연 모일 수 있을까? 모인다고 제대로 힘을 낼 수 있을까?안재성 작가의 이 나온 이후 손옥희의 발걸음은 더 바빠졌다. 그는 할아버지의 조그만 행적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어디든지 갔다. 심산 김창숙 선생의 며느리이면서 이관술이 동덕여고에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준 손응교를 성주 대가면 사도실마을을 찾아가 만났다. 거기서 수배중인 이관술이"대구경찰서 앞에서 구두닦이를 했다"라는 회고를 들었다. 또 손응교는 이관술이 대전 골령골에서 7월 초순에 학살되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실제로 1946년 7월부터 11월까지 열린 재판 과정은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변호인들이 항의한 것처럼 4000쪽이 넘는 사건 기록을 검토할 시간도 주지 않고 기소한 지 열흘 만에 무리하게 공판을 개시한 점이다. 또 피의자 홍계훈은 법정에서"취조관 여덟명이 팔다리를 포박하고 둘러앉아 걸레로 입을 틀어막고 물을 코에 부었다"라고 고문 사실을 폭로했다. 심지어는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제1회 공판일에 법원 앞에 있다가 체포된 전사옥 같은 사람도 전기고문을 당했고 석방될 때는 거의 폐인 상태로 나왔다. 손옥희는 논문을 접하고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 논문 한 편은 씻김굿과 같았다. 실제 할아버지는 '위조지폐' 사건의 주모자로 수배를 당했을 때 조선공산당 일각에서 북으로 피신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도망 가면 오히려 날조를 도와주는 격이라며 당당히 맞서겠다고 했다. 또 할아버지는 1946년 5월 4일부터 조선정판사 사장 박낙종과 서무과장 송언필 등이 본정서 형사대에게 잡혀갔을 때 항의하러 조선 제1관구경찰청장 장택상을 찾아가기까지 했다. 이관술이 위조지폐를 정말로 지시한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손주를 보며 손옥희는 1931년 반제동맹사건으로 구속되어서 찍힌 할아버지의 사진을 꺼내보았다. 할아버지는 동덕여고보 선생답게 식민지 교육 철폐를 외치고 교내에 경찰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일본 경찰에 치도곤을 당한 탓인가 맑은 얼굴엔 어딘가 피곤하고 두려움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참나무처럼 단단한 의지 또한 느껴진다. 할아버지께서는 학성이씨 충숙공 이예 선생의 18대 장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중동고보를 거쳐 한국, 일본, 중국의 수재가 유학한다는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1929년 동덕여고보교사로 취직해 미래가 보장되는 청년이었습니다.
60대 중반 이제 돌이켜보니 저의 반평생은 이관술 할아버지의 발걸음을 찾아다녔네요. 왜냐하면 저희 가족의 한때문입니다. 할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의 삼촌과 형부도 강제로 보도연맹에 가입 당해 불법 처형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세 자매는 행방불명되었고 사촌오빠는 전쟁통에 큰 부상을 입어 집안은 그야말로 쑥대밭이었습니다. 집안의 기둥이었던 큰이모마저 화병과 심장마비로 일찍 돌아가시니 이관술 할아버지의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의 가슴에 말로 다할 수 없는 응어리가 쌓였습니다.다행인가요? 2015년 한국외국어대학 박사학위논문인 에서 임성욱은 “이 사건을 미군정이 조작했다”라고 학술적 차원에서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동안 분분했던 ‘날조’였다는 주장을 학문으로 입증했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행적을 밝히기 위해 글을 썼던 장성운, 안재성 작가님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있던 어머니께서는 논문의 내용을 들으시고"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여러 날을 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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