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유학생간첩단사건 변론 한승헌 한승헌변호사평전 시대의양심_한승헌평전 김삼웅 기자
권력을 연장하거나 정권에 위기가 도래할 때이면 어김없이 위압책을 쓰고, 선거를 앞두거나 국민 여론이 악화되면 갖은 술책을 동원했다. 양날의 칼을 함께 쓸 때도 많았고, 분리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통령 선거를 열흘 앞둔 4월 18일, 이날은 김대중 후보의 장충단공원 유세에 100만 군중이 모여 민심의 동향을 보여주었다. 정부와 공화당은 창경원 등 국립공원과 영화관 무료입장 등 각종 선심책을 썼으나 시민들의 발길을 막지 못했다. 서 씨 형제는 일본 교토에서 출생한 재일교포 청년이었다. 형인 승 씨는 1968년 동경에서 대학을 마치고 모국에 유학 와서 서울대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과정을 마쳤고, 아우인 준식 씨는 1967년에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역시 서울대 법대에 유학중이었다. 변호인의 접견권은 민주사회의 기본인데도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한승헌은 서승 씨가 구속된 지 석 달 만에 피의자를 만날 수 있었다. 변호인 접견실이 아닌 의무실이었다. 그는 온 몸에 붕대가 감겨 실려나왔다. 고문을 견디다 못해 취조관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난로 연료 탱크의 기름을 머리에 붓고 불을 붙혀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취조관에게 차라리 죽여달라고 몇 차례 애원했으나 고문이 계속되자 자해를 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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