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일왕 부자 살해를 목표로 한 아나키스트 박열의 긴 감옥 생활과 민족주의를 향한 그의 헌신을 다룹니다.
조선침략과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인 일왕 부자를 처단하려다 '대역사건'이란 죄명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로 감형되어, 일수로 8,091일, 연력으로 22년 2개월 1일 동안 혹독한 일제 감옥생활을 견디고 출옥한 '운명의 승리자'가 있다. 당시 세계 감옥사에서 '하나의 죄'로 햇수로 23년이 넘도록 옥고를 치르고 살아남은 혁명가는 그가 처음이었다. 더욱이 그는 심신이 건강한 상태로 해방 후 생환하였다. 단순히 그가 아나키스트라는 이유로, 그리고 6·25 후 북한에서 활동했다는 행적때문에, 오랫동안 우리 역사에서 잊혀졌다. 그동안 아나키즘 을 반체제적인 이데올로기로 치부해 왔기 때문이다. ' 아나키즘 '을 '무정부주의'로 번역하는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모든 제도와 권력을 부정하는 이념으로 오해된 것이다. 식민지의 청년 박열(朴烈)에게 아나키즘 은 일제 강권주의를 대체하는 구원의 이념이었다. 일본 아나키즘 의 거두 오스키 사카에와 교유했으며, 강권주의의 상징인 일본 왕을 처단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박열의 사상적 근저를 이룬 것은 조국해방을 염원하는 민족주의였다. 아나키즘과 공산주의는 상극의 관계이다. 그는 공산주의를 배격했고 해방 후에도 이승만의 정부수립을 지원했다. 박열이 체포되기 전 도쿄에서 김약수·조봉암 등과 '흑도회'를 결성해 활동하다가 이탈하여 따로 '흑우회'를 조직한 것도 흑도회의 사회주의적 경향성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해방 후 북한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기피되어 잊혀졌다가 최근에야 '복권'되었다. 박열은 1902년 2월 3일 경상북도 문경군 마성면 오천리 98번지 샘골에서 아버지 박지수와 어머니 정선동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합격했다. 당시 수재들만 모인다는 이 학교에서 박열은 우수한 성적을 보이기도 했으나 일본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공부한다는 것이 창피하기도 하던 차에, 사상이 건전치 못하다는 이유로 3학년 때 퇴학당했다. 1919년 3·1혁명이 일어나자 시위에 나선 것은 물론, 지하신문을 발행하고 격문을 살포하는 등 독립운동에 가담한 것이 퇴학의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다. 박열은 18세가 되던 1919년 10월 도쿄로 건너갔다. 감시와 고문이 심한 국내보다 국외가 압박이 적겠다고 판단, 사상운동과 독립운동을 벌일 목적으로 결행한 것이다. 도쿄에 도착한 박열은 신문배달부, 식당종업원, 막노동꾼, 우체부 등의 일을 하면서 세이소쿠 영어학교에 다녔다. 1921년부터 정태성·김천해 등과 더불어 기존의 친목단체 '노동동지회'를 '재일조선인 고학생동지회'로 개편하고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일본사회주의동맹'의 창립을 전후하여 재일 조선인 유학생들이 새로운 사상운동에 합류하면서 박열은 김약수 등과 일본의 사상가이며 아나키스트인 오스기 사카에, 이와사 사쿠타로와 만나면서 이들로부터 인생관·사회관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1919년 3.1혁명을 전후하여 일본에는 노동하면서 공부하는 한국 고학생들이 많았다. 이들이 주축이 되어 '흑도회'가 창립되었다. 흑도회는 민족적 사회운동 단체로서 1923년 2월에 이름을 '흑우회'로 바꾸고 활동했다. 당시 박열은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와 동거생활을 하면서 '흑우회'의 기관지 발행과 비밀결사 '불령사'를 운영하며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박열과 함께한 가네코는 대단히 뛰어난 문필가로 학식이 높았다. 박열의 이름으로 발표된 논설 기사 중 상당 부분이 그가 대필한 것이다.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관동대진재를 전후하여 가네코 후미코를 비롯한 불령사 회원 17명이 일경에 검거되었다. 박열은 마침 조선의 고향집에 돌아와 있다가 구속되어 일본으로 끌려가고 다른 불령사 회원들은 대부분 일본 현지에서 붙잡혔다. 관동대지진이 발생하기 직전 일본 관헌은 급진적 사상과 사회단체를 일제 검속하면서 불령사 회원들도 구속했는데, 그나마 대지진의 와중에 학살 당하는 참변을 모면한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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